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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일님의 서재
  • 내밀 예찬
  • 김지선
  • 12,600원 (10%700)
  • 2022-06-20
  • : 1,148
내밀예찬, 제목 참 좋다. 내밀함을 어찌 예찬하지 않을 수 있으리.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이라니. 함께 예찬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리라.

이 결심이 잠깐 유보되는 사이 낯설음을 먼저 느꼈다. 저자는 충분히 내밀함을 동경하고 그리워하고 예찬할 만했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으니. 내밀함을 예찬하는 사람이 당연히 홀로 머물고 있을 거란 생각은 내 착각이었다. 이 책은 은둔과 거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내향인의 기록이었다. 비행기 타고 16시간을 간 곳에서 호텔에 꼼짝 않고 혼자 있고 싶다던 선배도 생각났다. 시부모와 남편과 아들 둘을 떠나 공식일정 외에는 혼자 있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 선배는, 낯설고 신기한 그 외부세상을 전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오직 혼자 있고 싶어 했다.

저자는 MBTI 얘기로 글을 시작한다. 좀더 복잡해진 혈액형버전이라는 논란도 있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두면 나쁠 것도 없을 것 같다. 지금 내가 그런 성향이라는 거지 내 운명이 그러하다는 건 아니니까. 미친듯 일하러 다닐 땐 외향적인 사람인 줄 알았지만, 일 관두고 보니 난 뼛속까지 내향인이었다.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억지로 웃고 화통한 척하며 살았는지, 그 오랜 시간이 신기할 뿐. 9년째 내향인 성향 유지 중. 매일 억지로 출근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저자의 다음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

"자기 객관화와 자기 합리화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 다음에 뒤따라야 할 성숙한 태도는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그럼에도 어떻게든 해봐야 겠다'일 것이다. 그래서 본성을 거슬러보려고 애쓰는 사람을 좋아한다. 아니, 존경한다. 대화에 서툴러도 앞에 앉은 상대방이 불편할까봐 어떤 이야기든 꺼내려는 사람들, 주목받는 게 싫지만 마음 단단히 먹고 무대 위에 오르는 사람들, PPT화면에 의지하여 갈라진 목소리로 발표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아름답다고 여기고 가끔은 애잔함도 느낀다."

그 애쓰는 사람들이 그만 해야 할 때도 잘 알았음 좋겠다. 태어남-자람-어른됨-취업함-결혼-출산-육아-계속 살아감,이라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언젠간 스스로 내려올 때도 있어야 할 테니까.

"세상의 많은 무표정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집중하는 사람의 무표정이 아닐까. 컬링계의 '안경선배', 김은정 선수의 한결 같은 얼굴처럼 말이다...언제나 한결같이 의연한 얼굴의 김연아 선수가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도 생각난다. "경기 중의 표정이나 감정표현은 반복된 훈련의 결과일 뿐, 경기 상황에서 음악의 정서에 실제로 빠져드는 것은 불가능해요." 평상시 덤덤한 얼굴의 그녀가 음악이 클라이맥스에 다다를 때쯤 보여주는 표정들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 또한 무한한 훈련의 결과라는 것이다."35쪽.

열심히 사는 동안 그 무표정에 얼마나 고생과 애쓰임이 함께 하는지. 그들에게도 내밀한 시간은 꼭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우린 무표정으로 살기 힘들다. 주로 미소지음으로 상대의 반감을 허물고 적당히 굴복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아무도 의식하지 않아도 될, 가면을 벗고 깊은 한숨이라도 마음대로 쉴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저자 말대로 '숨고 싶지만 돈을 벌어야 겠'으니 말이다. 지극히 내향적인 내 지인도 타인과 있을 땐 얼마나 사교적인지 많이 놀란다. 그렇게 우리는 어떻게든 해낸다(65쪽). 그래서 고양이들이 더 부러운지 모르겠다. 기싸움도 감정적 줄다리기도 자기 파이도 연연하지 않는 존재 고양이 헤네(78쪽). 인간에게 거는 큰 기대가 없으니 인간의 실체에 타격받지 않은 채로 영원히 내밀함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은 고양이들은 내밀예찬의 예찬을 받을 만하다.

"어떤 사람에게 해도 무난한, 어떤 상황에서 해도 대충 통하는 의례적인 말들은 편리하지만 게으르다. 어떤 모임에서 실컷 수다를 떨고 돌아오는 길에 어쩐지 공허한 기분이 드는 것은 이같은 이유일 것이다."131쪽.

​이 이야기도 적극 공감되었다. 내게 수다는 스트레스 해소 기능이 없다. 실컷 수다를 떨면 더 피곤하다. 하지 않았도 좋았을 얘기들이 생기고, 끝없이 이어지는 일상의 지루한 이야기들은 그저 지루할 뿐이다. 수다에는 품앗이 기능도 있어서 타인의 얘기를 듣고 나면 내 얘기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기는 것도 싫다. 목적과 주제가 있는 대화를 즐길 뿐.

​이 내밀예찬엔 팬데믹 상황도 적절히 잘 녹아있다. 이메일을 선호하고 다이어트를 시작하며 술자리를 추모하고 정적을 찾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들. 내향인인 저자가 직장에서 집에서 일에서 자기를 지키며 살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을 따라가보다 절로 응원하게 된다. 이미 결혼과 출산이라는 은둔하지 힘든 평범테크트리를 탔다면 그저 많이 지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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