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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근하고 식물집사
- 대릴 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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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 2022-06-20
: 214
이것은! 웃자라고, 축 처지고, 노랗게 변하는 식물 앞에서 오늘도 아리송한 나를 위한 참 좋은 실용적 식물 알기 안내서이다. 공학자 출신의 식물학자라니 더 신뢰가 간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반려식물을 위한 일기는 눈에 익은 식물들을 위한 내용이 꼼꼼하게 들어가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책 전체에는 식물들의 삶을 깊이 알아갈 때 식물집사로서 느끼는 벅참과 뿌듯함이 기록되어 있다. 차분하게 읽으면서 식물연쇄살식마로서 그동안 쌓인 죄책감이 많이 덜어지기도 했다. 토론토에 거주한다는 저자는 아마도 나만큼 죄책감에 쌓여 있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과거 식물연쇄살식마들의 마음을 이렇게 잘 알 리가 없다.
나 역시 식물이란 옆에 붙어 서서 5분마다 물을 주지 않으면 쓰러져 죽어버리는 예민한 엄살쟁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식물은 아름다워야 하고 잎도 떨어뜨리지 말아야 하고 잎이 노랗게 변하면 죽어가고 있다고 넘겨짚었다. 이렇게 아끼고 사랑하는데 죽어버리다니 억울함을 느꼈고, 화원에선 그리 예뻤으면서 집에 와선 이상하게 변해버리는 식물에게 배신감까지 들었다. 반려식물을 최고로 만족시키기 위해 내 돌봄노동을 어떻게 최적화해야 하는지 몰랐고, 식물의 성장환경을 이해하고 자연의 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도 몰랐다.
강아지처럼 식물도 집에 오면 적응기를 거치고, 식물에게는 '주관적 생명'이란 것도 있었다. 물주기의 중요성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었고, 빛이 얼마나 중요한 요인인지 생각하지 못했다. 내게 식물은 수동적으로 한 곳에서 얌전히 아름답다는 칭찬이나 받다 어느 순간 생명줄을 놓아버리는 알 수 없는 존재였다. 식물 또한 삶과 죽음을 겪고 있었고 반응하고 호응해왔는데 말이다. 그리고 식물은 그 식물에게 제공된 환경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선 익혀야 한다. 적절한 빛과 물을 공급하고 뿌리가 행복하도록 흙을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물이 빛 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바꾸는 식물의 생명과 순환을 알아야 한다.
빛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조도계까지 이용해 관리되고 있는 저자의 식물들. "이 공간은 얼마나 밝지?"가 아니라 "이곳에서 내 식물들은 어떤 빛을 볼 수 있을까?"로 바꿔 물어야 한다. 식물의 잎 높이로 눈을 낮추고 식물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식물이 표정을 지을 수 있다면 누군가 "적은 빛에서도 잘 자란다"라고 말할 때마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식물을 장식용으로만 사용하는 것을 합리화하려는 의도일 뿐이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음지에서 지내는 식물을 보며 "50풋캔들의 빛으로 우아하게 굶주리는 중"이라고 말하곤 한다. 식물이 비교적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을 수 있다.61쪽
풋캔들은 촛불 하나가 1피트 떨어진 곳에 있는 1제곱미터 면적을 비추는 밝기. 조도계는 풋캔들로 밝기를 알려 주고 200~800풋캔들이면 오든 열대 관엽식물이 만족스럽게 성장한다고 한다. 빛만 해도 직사광, 여과된 빛, 산란된 빛, 반사된 빛, 하늘 빛에 인공조명까지, 반려할 대상을 위한 기초 공부는 기본이다.
무엇보다 저자의 식물들이 마음껏 사랑받고 자라는 저자의 공간이 참 아름다웠다. 식물을 아끼는 사람들은 마음도 아름다울까. 내가 아는 식물러버들은 마음이 까칠하고 뾰족해 사람 상대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사람보다 말 없고 고분고분한 식물들한테 매달린다는 의심도 지울 수 없다. 무슨 이유든 식물을 환대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사정이 있겠지. 나도 그 사정이 있다. 저자의 반려식물 일기를 열심히 밑줄 긋고 읽으며 그 중 하나를 나의 반려로 만들어보려 한다. 나도 반려식물일기를 써야지. 식물연쇄살식마의 과거를 떨쳐버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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