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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일님의 서재
  • 노 본스
  • 애나 번스
  • 15,300원 (10%850)
  • 2022-06-20
  • : 463
세상 참기 힘든 역겨운 일들이 뭐 한두 가지겠냐마는 종교를 핑계로 한 전쟁은 독보적이다. 그야말로 종교는 핑계일 뿐이다. 어느 종교의 신이 사람을 죽여 내 종교를 확장하라고 하겠는가. 나 혼자 생각하고 추측하고 살펴보고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전쟁의 이유는 자본주의 이전엔 권력의 욕심, 자본주의 이후엔 돈으로 대변되는 권력의 욕심이다.

권력의 욕심은 자존심 싸움에 땅따먹기 욕심이 가세하기도 하고, 남자 권력자는 지보다 약한 것이 힘이 강해지는 것 같으면 견제하기 위해서도 전쟁에 나선다. 또 자신의 권력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교묘히 이용하면 사람들은 알아서 권력을 옹호하며 서로 뭉친다. 이 전략은 권력이 위기에 처할 때 특히 좋은 처방이 된다. 권력은 위기를 넘기고 쉽게 권력을 재창출한다. 국지적인 갈등을 부추기는 건 무기소모에도 도움이 되고 군산복합체 육성과 활용에도 좋다. 여기에 역시 엄청난 돈이 오고간다. 종교갈등이나 민족주의 활용, 핵무기, 빨갱이 색칠은 고전적이고, 지금은 여성 멸시, 장애인 혐오, 성소수자 혐오를 활용하기도 한다.

애나 번스의 신간이라길래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가제본을 들고 설레었다. <밀크맨>으로 강한 펀치 한 대 맞은 거 같은 아픔과 충격을 느낀 후, 이 작가의 말이 어떻게 또 나아갔는지 궁금했다. 근데 <노 본스>가 <밀크맨> 한참 이전에 나온 데뷔작이라능. <밀크맨>에 밀릴 건 없다. 더 피튀기고 더 난해하고 더 부조리하니까.

<노본스> 는 1969년 영국군이 처음 북아일랜드에 왔을 때부터 1994년 정전선언 때까지 아도인이란 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과거에 한 나라였던 아이랜드와 영국의 재합병시도를 둘러싼 카톨릭교와 개신교도의 충돌로 3500명 이상의 사망자와 수만 명의 부상자, 실종자를 남긴 비극. 종교는 핑계.

전쟁이 정말정말 싫은데 가장 큰 이유는 전쟁을 선호하는 남성 권력자의 욕심 때문에 약한 존재들, 여성, 노인, 어린 아이들, 전쟁터에 끌려간 피지배계급 남성이 큰 피해를 입는다는 데 있다. 전쟁에서 남성권력자가 피해를 입는가? 끝까지 잘 처먹고 살다가 비행기 타고 도망가 망명하거나 신분을 고쳐 천명을 다한다. 빼돌린 국가재산으로 호의호식하면서. 내 죽음을 적에게도 알리지 않고 전장에서 끝까지 임무를 다하는 전쟁책임자는 없다.

전쟁의 고통은 사회적 약자들이 짊어진다. <노본스>는 적나라하게 그 점을 보여준다. 트러블(the Troubles) 당시 일곱살이었던 어밀리아를 통해 취약한 상태에서 파괴되는 여성의 몸과 아이의 정신이 무참하게 다가온다. 작가도 어느 정도 변태적이라는 비난을 감수했다고 느낄 정도로.

"모두가 다 그쪽 성향이 것은 아니었다. 어디에서든 당연히 그랬다. 소요에 참가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학생들도 있었다. 종교적이거나 뭔가 영혼과 관련된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어떤 사람들을 말하는지 알 거다), 그러니까 사이에 낀 사람들, IRA 는 아니어도 이런 시기에는 늘 동참하는 특수한 동조자들도 있어서, 이런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나는 안 한다고 말하기는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선생, 배넌 선생님인가 누군가는 용감하게도 5학년 교실 창문에 매달려서 "무식쟁이들! 아일랜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지도에서 아일랜드가 어딘지 찾지도 못하잖아!"라고 외쳤는데 사실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밤에 집에 갈 때 그 지역을 지나가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집이 그 지역에 있지 않으니까. 그러니 아일랜드에 대해 알건 모르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쪽도 저쪽도 무식쟁이이긴 마찬가지인 듯했다." 111쪽, 정치적인 무엇, 1977년

<노 본스>의 '정치적인 무엇' 장은 '무언가 정치적인 일이 일어났다....동네에서 누군가가 총에 맞았다'로 시작한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동네에서 누군가로 알려진 학생이, 여자가 총에 맞아 죽었다. 죽은 사람은 IRA라는 게 밝혀지고 학교의 수녀는 '정치적인 것에 간여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며 가장 정치적인 발언을 해버린다. 학생들은 동요하고 저항하기로 한다. 이 온갖 정치적인 무엇이 충돌하고 교차하는 지점에서, 모두 다 어떤 성향은 아니지만 학생의 죽음을 지나칠 수 없는 정치적인 입장이 있다. 또 이런 일에 늘 동참하는 특수동조자들도 있고, 이 틈에서 도저히 개입하기를 거부할 수 없는 입장도 있다. 그리고 자기는 그 지역에 속해있지 않아 별 위험할 게 없으니, 맘껏 지도에서 아일랜드를 찾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식 운운하는 진중권 같은 남자도 선생이랍시고 떠들기도 한다.

정치적인 무엇이 일어나는 과정 또한 정치적이었을 것이다. 권력의 욕망을 내면화해 총받이로 나설 필요도 없으며, 갈등을 누가 부추기는지, 이 트러블로 궁극적인 이익을 보는 놈들이 누구인지만 생각하고 전쟁은 그들만의 싸움으로 낙후시켜야 한다. 어떤 성향이나 어느 쪽에 굳이 낄 필요도 없고 무식한 놈이 떠드는 무식한 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노 본스>의 교훈을 챙겨간다. 권력자들 배나 불리고 그들의 욕망이나 채우는 그런 트러블에 끼어들지 말고, 조종되지 말고, 차분하게 나의 공동체를 지키자고.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저자의 메시지 중에 어밀리아의 영혼과 몸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읽는 것만으로도 책읽기가 힘들어질 수 있으므로 이 점은 고려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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