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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비, 해방의 괴물
- 김형식
- 16,200원 (10%↓
900) - 2022-05-30
: 132
근래 읽은 책 중 가장 많은 포스트잇을 쓰게 한 책. 처음부터 끝까지 쫀득하니 재밌다. 라캉에 하버마스, 아도르노, 니체, 바디우, 아감벤, 레비나스, 들뢰즈, 스피노자까지 남자 현인들의 이야기가 어렵지 않게 읽히는 것도 큰 미덕이고, 현실의 흐름을 반영한 각종 영화, 드라마 분석까지 흥미진진한 내용이 가득이다. 우리가 지독하게 겪어야 했던 팬데믹을 거쳐 유토피아까지 검토한 후, 종말을 사유하는 것이 미래를 개방하는 일임을 주장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기까지 뭐 하나 버릴 논의가 없다.
저자는 우리가 재난으로 인해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빼앗겼다고 한탄하지만 사태의 본질은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한다. 즉 우리는 이미 평범한 재난들로 가득한 이상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은근히 이해되지 않음? 오래전에 이미 망가져버린 이상한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 가시화된 결과물이 지금의 재난이라는 것이다. 게다 재난은 우리의 일상을 환기하고 세계를 낯선 공간으로 다시 돌보게 만든다. 그러니 이제 일상이 회복된다고 먹고 마시고 놀자는 향락 부추김에 빠져들 이유도 없다. 일단 찬찬히 생각해 봐야 한다. 종말의 쓸모에서부터.
종말에 대한 관심은 가능한 대안적 세계를 발명하고 상상하는 일에 관여하여 우리의 정신을 인간 조건의 가능성들에 열어놓는다(56). 그래서 윤리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종말이 오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그래서 범죄자에게 마이크를 주지 말되 범죄에는 서사를 부여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83). 범죄자는 악마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한 명의 인간이므로. 무언가를 근본악으로 여기는 것은 가장 손쉽고 무책임한 회피이자 태만이다. 범죄를 서사화하는 행위는 악을 초월성이라는 진공상태로부터 끄집어내 철저히 현실화하는 작업이다(87). 또한 희생자를 연민하지 말고 항상 학살자들의 면전에 희생자들을 계속해서 인간성의 대표자들로 지명해 들이밀어야 한다. 희생자들을 호명하고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다시는 이런 재난이 반복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재난과 종말 가능성을 언급하는 데 자본주의가 빠질 수 없다. 국경을 넘나들며 탈영토화된 괴물은 사유의 종말을 지시하며 사유하는 능력을 빼앗았다(93). 자본주의에게 누가 이 강력한 권력을 주었는가. 자본주의의 영구한 통치란 사람들의 착시와 헛된 믿음이 투영되어 만들어진 거대한 신기루와 같다(95). 자본주의에 봉사하는 재단사들이 벌거벗은 리바이어던에게 '보이지 않는 옷'의 신화를 만들어낸 결과로 사람들은 그 옷이 실재 존재하는 것처럼 믿어버리게 되었다. 이로써 자본주의 자체가 망하냐 아니냐와 상관없이 우리가 자본주의의 종말을 받아들일 수 있으냐의 문제가 더 중요하게 된다(102).
여기서 좀비가 등장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속성을 뱀파이어에 비유한 바 있는데, 뱀파이어는 노동자를 이용해 이윤을 획득하고 자산을 축적해 살아간다. 살아남기 위해 인간의 피를 공급받아야 하므로 인간에게 기생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좀비는 거지 몰골에 상한 육체를 끌고 다니며 힘겨운 삶을 이어간다. 이 좀비가 초래하는 재난은 바이러스 좀비로 진화하며 더욱 강력해지고, 전방위로 전염시키면서 개인의 1차적 재난을 사회적 2차 재난으로까지 확대한다. 좀비는 느리지만 거스를 수 없는 재난으로 퍼져나가 자본주의를 파멸로 몰고 간다. 과연 혁명의 괴물이 될 만하다. 마지막까지 피를 빨 먹잇감을 남겨놓아 후일을 도모하던 뱀파이어는 입맛을 다시다가 파멸할 뿐이다. 자본이 의도했던 탈지역화는 바이러스 좀비를 전 세계에서 활개치도록 돕는 일로 만든 채.
"자본주의가 독점과 착취의 대상을 인간 이외의 모든 생명, 광물, 자연환경, 그리고 지구 전체로 확대했을 때, 자본주의는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넜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비롯한 여러 생명, 다양한 생태적 자원을 관리할 능력이나 의지가 애초에 없다...그 대가는 대규모 재난이라는 형태로 인간에게 되돌아오기 시작한다. 깊이 상처 입은 자연은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지만, 자연 앞에서 가진 게 생명뿐인 인간은 달리 지불할 능력이 없다. 이 재난은 익숙한 경제적 재난과는 다르다. 생태적 재난은 종과 지역과 국경을 넘나들며 전 지구를 파멸로 몰아가는 재난, 좀비와 같이 모든 생명과 영토를 절멸로 몰아넣는 재난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영향력 너머에서 도래하는 막대한 폭력이다. " 133~134
그래서 좀비는 경고한다. 순진하게도 재난만 종식된다면 다시 일상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재난 이전에 일상은 이미 망가져 있었다고. 자본주의적 일상이 팬데믹이라는 파국을 불러왔음을 인식하라고. 아버지(이 아버지는 종말의 순간이 다가올수록 '홀로 살아남기'에 전력한다.239)의 세계를 멈추고 종말을 끝장내기 위해 종말을 실행하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이 심각한 문제의식은 우리가 미처 도달하지 못한 세계, 유토피아로 이어진다. 그리고 결국 종말이란 유토피아에 선행되는 선결조건임을 다시 강조한다. 양치기 소년의 역설(286)은 뱀파이어의 현란한 논리에 흔들릴 뻔한 마음을 다시 잡아주고.
그렇게 자본주의를 지적으로 열나 까주고 고전이 된 좀비영화부터 최신 좀비영화까지 두루두루 훑어보고 나니, 우아하게 스피노자의 자유에 대한 사유로 도착해 있다. 결국 종말을 끝까지 밀고 나간 좀비는 또 다른 미래를 가능하게 할지니 미래에 대한 그림이 슥슥 그려지기라도 할 듯한 뿌듯함으로 책을 덮는다. 그 무엇보다 사유와 성찰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종말을 끝장내자는 저자의 마지막 얘기에 루이 암스트롱의 연주까지 떠올려보면서. 좀비 영화 한 편 제대로 본 적 없는 나의 '이 책 재밌음' 평가가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되기 바라는 마음 가득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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