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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서울 지망생입니다
- 김미향
- 13,950원 (10%↓
770) - 2022-05-04
: 183
단정하고 세련된 복장 위에 목에 걸린 신분증이 흔들릴 정도로 경쾌하게 걸으며, 고급진 가죽 가방을 어깨에 메고, 서울 중심부에 있는 근사한 1층 로비로 들어선다. 깨끗한 통유리로 만든 육중한 자동문이 우아하게 열린다. 경비아저씨와 웃으며 아침인사를 주고받고 엘리베이터로 총총거리며 다가간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가끔 동료나 상사를 마주치면 '좋은 아침'이라며 한국어로 직역된, 식상하기 짝이 없는 이상한 영어인사를 하고, 나누지 않아도 그만인 정치뉴스나 연예인 소식을 공유하고 나면 업무공간에 얼추 다가간다. 아침에 청소노동자가 깨끗이 닦아 놓은 탁자 위에 가방을 정리해 놓고 편한 신발로 갈아신고 컴퓨터 전원버튼을 켠다. 부팅되기 전까지 풍부한 향을 풍기는 커피 한 잔을 탕비실에서 받아와 오전 회의가 있기까지는 오늘 할 일을 정리한다....는 개뿔, 서울 중심부에 있는 고층 건물 6층을 주5일, 어떤 때는 주 6일 왔다갔다하며 일을 관두기 직전까지 나는 누구를 죽이고 싶다거나 아님 내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둘다 하기 싫어서 때려쳤다. 우아하게 열린 자동문과 경비아저씨, 전날 마신 술 기운을 떠쳐내기 위해 마신 커피 얘기만 진짜다.
서울을 욕망했다 탈서울을 원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탈서울 지망생입니다> 역시 더 잘 살기 위해 서울로 진입했다 벗어나려 했을 뿐, 우리 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더 잘사는 모습이라고 사회와 미디어와 정치권력이 조장한 그 모습 그대로.
공부 잘 하고 경쟁에서 이겨서 어쨌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고 또 경쟁해서 좋은 스펙을 쌓고 또 경쟁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또 경쟁해서 승진하고, 그러다 적당히 경쟁에서 성공한 비슷한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적당한 평수의 아파트를 얻고 아이를 낳고 차를 바꾸고 주식을 하고 또다른 부동산에 눈을 돌리고, 그렇게 서울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는 이야기.
이 책에도 좋은 직장과 좋은 주거조건, 좋은 교육환경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꽉 차있다. 서울 중심부의 아파트에 사는 절적한 교육수준의 경제력 있는 부모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욕망 이야기.
다만 이 책은 서울을 욕망했던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는 고민에 부딪히고, 대안 마련을 적극적으로 실행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실체도 없는 욕망을 어깨에 메고 10년을 넘게 일상을 통제하며 아끼고 아껴서 살아도 결국 제자리일 뿐이라는 걸 알았을 때야 그 욕망을 돌아보게 된다. 탈서울, 이것 자체가 얼마나 큰 실천이고 의지의 전환인가. 인생의 지향점이 달라지는 큰 계기이다.
서울에 올라온 형은 IT개발장이에요. 월급이 계속 올라요. 형은 상황이 괜찮아 보였는데, 그럼에도 어느날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부유한 건 꿈도 꾸지 않는다. 다만 방에서 빨래 건조대 놓은 공간을 고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요.
크...방에 건조대 놓을 공간을 고민한다는 얘기에 저절로 공감이 됐다. 월급이 계속 올라도 뻔한 서울의 원룸 주거공간을 벗어날 가능성이 크게 보이지 않는다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스스로를 잘 돌아봐야 할지도 모른다.
어느날 예능프로그램 <나혼자 산다>를 별생각없이 보고 있었다. 하루는 배우 한 명이 출연해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오피스텔에서의 일상을 보여주었다. 출연자들은 성수동 근처에 무슨 식당이 맛있고, 어디 까페가 분위기가 좋다며 '동네수다'를 질펀하게 늘어놓았다. 솔직히 성수동 주민 아니면 잘 모를 그런 식의 대화를 보는 전국의 1인 가구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서울에 살지 않는다면 이질감을 느낄 것이다. 인구 절반이 비수도권에 사는데 수도권이라도 성수동이 어디 붙어있는지 모를 수도 있는데...
그 동네가 서울이 아닌 강원도 어디의 동네였다고 해도 그게 동네수다가 되어 공중파에 나올 수 있을까. 6시 내고향, 같은 프로그램 말고 힙한 연예인이 나오는 프로그램에 말이다.
모든 것이 그야말로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양질의 삶의 조건을 비롯한 경제사회문화적 인프라가 서울에 있다. 노인에게 더욱 절실한 의료서비스나 아이에게 중요한 교육여건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탈서울을 위해선 어느 정도의 정신승리는 필요하다. 궁극적으론 서울이 혼자 독식한 그 많은 사회적 인프라를 나눠야 겠지만.
지역균등발전은 식상한 정부의 구호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요구되는 절실한 이슈다. 우리 스스로도 서울을 욕망하기를 그만두어야 한다. 권력은 서울의 고위층 중심으로 세습된다는 것을 누누히 보고 있지 않나. 나머지는 아예 안 되는 게임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애초에 한동욱의 딸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 책은 탈서울이 낭만적으로 읽히는 것도 경계한다. 진지하게 서울을 떠날 결심을 하고 있다면 실제 이를 감행한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쏠쏠하게 챙길 수 있다. 부록으로 '탈서울에 관한 정보를 얻는 방법' 또한 꿀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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