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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일님의 서재
  • 크게 그린 사람
  • 은유
  • 14,400원 (10%800)
  • 2022-05-20
  • : 2,393
안 보이던 사람을 보이게 하고 잘 보이던 사람을 낯설게 하면서 사람의 크기를 바꾸어가는 인터뷰집. 여기에 은유에 의해 크게 그려진 18명의 이야기가 있다. 김용현, 김미숙, 김진숙, 김도현은 원래도 큰 사람들이었는데 은유 덕분에 더 켜졌다. 김중미, 이영문, 신영전은 은유 덕분에 알게 되었다. 자신이 하는 일로써 모두의 해방에 기여하는 사람들. 아름다운 삶을 스스로 사유하는 사람들.

스물여섯에 해고자가 된 김진숙은 존엄을 지키기 위한 복직투쟁을 37년간 이어간다. 김혜정은 자신이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반성폭력 활동가로, 홍은전은 노들장애인야학에 들어감으로써 경쟁할 필요를 가르치지 않는 교사가 되었다. 윈도는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은 할머니의 이름을 불러주는 경찰로서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고, 조기현은 스무살에 아버지를 보살피며 돌봄을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투쟁을 시작한다. 신영전은 가난한 사람들을 옹호하며 무상의료에 목소리를 높이는 의사로, 시와는 노래를 포기하지 않고 관객에게 찾아가 공연하는 가수로, 민금채는 지구를 위한 대체육 개발자로, 김현은 일상을 위로하는 시인으로, 김혜진은 더 나쁜 사람이 되지 않게 하는 글을 쓰는 소설가로, 수신지는 가부장제에 균열을 내는 만화가로, 모두 자기 몫 이상을 수행하고 이로써 모두의 해방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산재로 가족을 잃은 김미숙과 김도현, 실천 그 이상을 실천해온 김용현, 가슴벅참 없이 읽을 수 없는 인생으로 살아온 김진숙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그냥, 사람>으로 이미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유를 들려준 홍은전의 인터뷰는 내 인생도 돌아보게 한다. 그의 세계는 급격이 두 번 바뀌었다고 한다. 노들야학으로 한 번, 고양이로 한 번. 경쟁하지 않는 교육을 주고 받고, 중증장애인과 바다로 모꼬지 가는 법 같은 것을 배우게 되는 교육. 그리고 고양이. 인생이 바뀌지 않기 힘들다. 난 사회주의로 한 번, 여성주의로 한 번 인생이 급변했는데, 내 건 고양이나 야학보다는 좀 후진 거 같네. 홍은전은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많은 것들을 인간적인 것이 지쳤다. 나는 동물이다.

이 말이 왜 안도감으로 마음 깊이 박혔는지. 경쟁하고 이기고 물리쳐서 자기가 왕이 되려는 인간이 영어를 잘한다는 칭찬과 함께 법무부장관이 되는 꼴을 보았고, 그를 우러르는 인간들에게 크게 상처받았다. 어쩌면 한동훈은 이미 그렇게 살아도 되는 사람일 것이다. 경쟁에 이기기 위해 많은 것들을 통제하고 포기하며 집요하게 성공에 집착한 결과, 권력을 만끽하는 데 주저함이 있을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슬픈 건 그의 안경과 스카프를 칭찬하고, 권력을 세습하기 위해 10대 자식에게 대필문화에 적응하게 한 파렴치한 행위를 능력으로 인정해주는 사람들이다. 영어도 못하고 비싼 스카프 살 능력도 없고 미국대학 보내기 위해 자식에게 뭘 해야 하는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나는 동물이다'는 오히려 인간성을 회복하겠다는 선언으로 들렸다. '나도 동물이다.'

돌봄이 긍정적인 인간의 지위를 누리게 해준다고 그는 말했다. "이런 거예요. 제가 산업기능요원으로 공장에서 일할 때나 노동현장에서는 선택권이라는 게 없었어요. 부속품, 기계, 노예가 돼요. 힘드냐? 물어봐서 힘들다 그러면 '뭐 힘들어 새끼야. 나이도 젊은 새끼가'하고 욕을 해요. 인간 취급을 못받아요. 근데 보호자로서 모든 걸 선택하고 판단해요. 인간 주체로서 내가 이 상황을 잘 헤쳐나가기 위해선 역량이 필요하고, 해결할 때마다 입증하죠. 이버지를 잘 돌봤다. 내가 이 문제를 잘 헤쳐나갔다.

당뇨쇼크로 쓰러진 아버지를 스무살부터 돌본 조기현은 '돌봄이 긍정적인 인간의 지위를 누리게 해준다'는 사유까지 나아갔다. 많이 놀랐다. 돌봄이 값싼 여성의 노동력에 기대고 있을 때는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였다. 이 깨달음을 근거로 그는 목소리를 내며 돌봄을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아버지가 쓰러진 일로 스무살의 청년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거구나...'나는 아빠를 죽이고 싶었던 사람이다',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아버지를 신경쓰는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는 그의 고백은 돌봄노동을 해야 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쉽게 넘길 수 없는 문장이었다.
공감능력을 흔히들 얘기하는데 공감능력만으로는 너무 힘들어요. 공감능력만 있으면 정말 본인이 아파서 먼저 드러눕게 되지요. 공감능력을 필요한데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몸과 마음의 쿠션이 튼튼한 사람이 의사가 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공감능력과 회복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환자가 위로가 되죠.

<의대생을 학교를 떠나라>는 칼럼을 썼던 신영전의 이 이야기는 왜 공감능력 많은 사람들의 공감이 공허한지 단박에 알게 해주었다. 공감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중요한 건 공감 후 일어나는 일들이다. 공감능력만으로는 본인만 힘들어 드러눕게 되기 쉽다. 성폭력예방교육을 받고 강사가 되려 했을 때, 난 성폭력 사례만 듣고도 드러누워버렸고 강사가 되는 일은 교육이 삼분의 일도 진행되지 않았을 때 포기해버렸다. 회복력이 떨어져 좋은 상담을 하지 못할 거란 걸 뻔히 알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큰 사람들의 삶을 쓰면서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은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다'는 니체의 말을 책에 인용했다. 그러게. 자기만의 길을 간다면 남들 따라가거나 흉내내거나 눈치볼 일 없으니 누굴 만나지도 않겠지만 또 만난다해도 별다를 일은 없겠지.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그 사람들 이야기로 한동안 마음이 훈훈했다. 더디지만 꾸역꾸역 가고 있는 나만의 길이 뿌듯하기도 하고. 밀칠 사람도 없이 이길 사람도 없이 한 걸음씩 자기 길 가는 사람에게 깊은 존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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