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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아름답고 추한 몸에게
- 김소민
- 13,950원 (10%↓
770) - 2022-04-20
: 446
책을 고르는 기준 중에 가장 높게 치는 것은 웃김이다. 이 세상에 그 많은 책들 중 웃기는 책이 젤 좋다. 글을 쓰면서 조지 오웰처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정치적 글쓰기를 지향하지만, 역시 놓칠 수 없는 것은 웃김. 정희진의 책은 정치적 메시지가 넘치고 게다 우아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웃기기 때문에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내용 하나 버릴 것 없이 웃기는 책을 또 만났다. 사회와 사람, 관계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건드리고 들쑤시고 돌아보고 나서 감동까지 받으라고 한다. 중간중간 크크크크크 웃겨주면서. 나이 든 몸, 장애가 있는 몸, 가난한 몸, 병든 몸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몸에 대하여 썼다고 하는데, 그 몸이 온갖 것들과 부딪히는 대로 생긴 다양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특히 마사 누스바움의 혐오 분석은 글 전체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그래서 이 책은 40대 여성이 쓴 몸 이야기이지만, 두루두루 읽어볼 만하다. 특히 이준석처럼 몸에 대한 혐오로 자기 입지를 쌓아올린, 입이 역겨운 몸이 뭐가 문제인지 알기에도 좋은 책이다.
돌봄의 윤리, 동물권, 개-되기, 혐오와 수치심, 외로움, 불안, 질병, 죽음, 다이어트, 여성혐오, 성형, 인종차별, 아동학대, 탈코르셋, 장애, 진화론, 무연고 장례 문제까지 몸과 관련된 거의 모든 문제들을 다루는데, 그 이야기들이 모두 기억하고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다. 그중에 뽑은 몇 가지 이야기.
2019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대소변을 못 가리시니 너무 수치스러워하시더라고요. 그 심정이 이해됐어요. '우리 사회에 늙고 병들어갈 권리가 있을까?' 늙고 죽어가는 걸 수치스러워하도록 조장하잖아요. 호스피스 병원에서도 아버지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거부하셨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분들을 정말 좋아하시더라고요. 정성껏 마사지해주시고 몸을 씻겨주시니까 아이처럼 기뻐하셨어요. 몸은 몸을 원하거든요. 어릴 때 사랑을 촉각으로 느끼듯이요. 이분들이 아버지 몸을 잘 돌봐주시니까 아버지가 더는 수치를 느끼지 않으셨어요.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걸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적절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우리는 몸을 존중할 수 있어요. 209쪽
한 정신과 의사의 인터뷰 중 나온 이야기. 그니까. 늙어 죽어가는 게 왜 수치스러워야 하냐고. 누구 안 죽을 사람 있어? 누구 똥 안 싸는 사람 있냐고. 사람은 늙음과 죽음 앞에서도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하므로, 돌봄 노동자는 최고의 존경과 높은 임금으로 그 노고에 보답해야 한다고. 국가에서 아예 공무원화해서 고용과 근무조건을 보장하면 더 좋고. 얼마나 중요한 노동을 하고 있는데... 돌봄 노동자가 말야. 자식도 배우자도 못 하는 걸 하고 있다고. 그들의 돌봄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보상해야 해. 사회에서 떠받들어야 한다고. (근데 나 요새 자꾸 반말하고 싶어하는 거 같다)
김도현은 <장애학의 도전>에서 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에 대가가 주어지는 게 노동규범인데 이제는 대가가 곧 가치가 됐다고 썼다. 2009년 영국 신경제재단 연구에 따르면 월급 1만 3000파운드를 받는 보육노동자는 임금 1파운드당 7~9.5파운드의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지만 연간 소득 50만~1000만 파운드를 받는 투자은행가는 임금 1파운드당 7파운드의 사회적 가치를 파괴했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한 동창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집에 갔더니 엄마가 나보고 나물을 무치래. 나같은 고급인력한테...그 동창이 외국계 기업에서 공동체를 위해 무슨 가치를 생산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물을 무치면 여러 사람이 한 끼는 먹을 수 있다.193쪽
확실히 임금을 많이 받을수록 사회적 가치를 파괴할 가능성은 커지는 듯. 은행이나 증권사, 정치권력 등 그들이 파괴하는 사회적 가치는 얼마나 될까. 자기 노동이 사회적 가치를 파괴하는 걸 아는 그 임금노동자는 알까.
나이 드는 게 슬픈 까닭 하나는 어루만져주는 손길을 느끼기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내 인생을 말아먹은 '내면아이'는 여전히 튀어나와 울어재끼고, 그럴 때마다 나는 흰머리 휘날리며 털 많은 원숭이 모형에라도 달려가 안기고 싶다.176쪽
아기 원숭이조차 가짜라도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지는 엄마에게 매달렸던 사례를 들어 얘기한 이 내용은 깊이 감정이입됐다. 내 인생을 말아먹는 '내면아이' 또한 시도때도 없이 지랄발광이다. 내면아이 입막는 법, 내면아이 등장거부권, 내면아이 천당보내는 법, 이런 거 있었음 좋겠다. 털 많은 원숭이 모형에게 달려가기 싫으니.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혐오에 휩싸이게 된다는 점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두려움은 취약성 때문에 생기는데, 인간들은 모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두려움을 부인하지 말고 두려움을 전환시킬 대체물을 만들 필요가 있다. 지식이나 예술은 우리를 달래기 좋은 수단이고 예술의 윤리적, 정치적 역할이 여기 있다.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 부정적 에너지는 분노로 이어지고, 밖에서 대상을 찾아 내 두려움을 투사시키게 된다. 혐오의 대상은 이 투사의 메커니즘을 통해 발견한 것. 혐오는 작동방식이 있으므로 이를 알고 멈추게 해야 한다. 이 작동방식에 대한 분석능력이 있어야 쉬운 혐오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인정하고 배우고 반성해야 한다.
특히 소수자에게 공적 보호가 느슨해지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은 위험하다.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스피커가 혐오를 승인해주면 정도에 따라 혐오는 급진화되고, 그 스피커에 조종되는 대중은 금방 그 혐오를 따라하게 되고, 자기가 살기 힘들다고 느낄수록 더 강화된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생각나는 놈이 있으실 것. 걔 우아하게 욕해주는 걸로 오늘도 보람찬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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