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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rise304님의 서재
  • 위로를 주는 빵집, 오렌지 베이커리
  • 키티 테이트.앨 테이트
  • 19,800원 (10%1,100)
  • 2023-06-23
  • : 3,971
와틀링턴의 열정적인 베이커 키티와 든든한 버팀목 앨의 베이킹 이야기

『위로를 주는 빵집, 오렌지 베이커리』 키티 테이트&앨 테이트 지음, 이리나 옮김, 윌북


 

밝은 오렌지색 표지 가운데에 실린 사진 속에는 진중해 보이는 중년 남성이 빵 하나를 들고 서 있고 그의 옆에는 미소 짓는 빨간 머리 소녀가 빵을 한 아름 들고 서 있다. 두 사람의 머리 위로는 '오렌지 베이커리'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사진 중앙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픈'이라고 적힌 팻말이 작게 그려져 있다. 오렌지 베이커리가 영업 중이라는 의미 같은데, 두 사람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걸까?

 

『위로를 주는 빵집, 오렌지 베이커리』는 《타임스》 선정 2022년 최고의 푸드북 열여덟 권 중 하나로 뽑혔고, 아마존 요리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오븐에서 갓 나온 빵에 귀를 기울이면 들려오는 브레드송, 거기에 작은 희망의 씨앗이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브레드송BREADSONG 즉, '빵 노래'가 이 책의 원제인데, 우리나라 출판사 윌북에서 '위로를 주는 빵집, 오렌지 베이커리'라는 다소 긴 제목으로 바꿔 붙였다. 오렌지색 표지와 잘 어울리기도 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위로받은 느낌이라 잘 지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알라딘에서 처음으로 독자 북펀드에 참여해 봤다. 내가 좋아하는 빵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고 하니 부쩍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평소에 요리책이나 베이킹책을 즐겨 읽지만 음식 에세이 책도 좋아해서 레시피가 실려 있지 않았어도 재미있게 읽었을 텐데, 이 책의 절반 정도는 레시피로 구성되어 있다.

책에 어떤 레시피를 넣을지 결정하는 게 이 책을 쓰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사실 키티는 순전히 본능에 따라, 기억에 의존해 빵을 굽는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어떤 빵을 책에 넣을지 결정한 다음 레시피를 작성해야 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정확한 재료의 양과 기술을 명확히 밝히는 작업을 해야 했기에, 우리는 키티의 대부모인 줄리아와 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는 매주 줄리아와 앨에게 레시피를 세 개씩 보내주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들의 피드백을 기다렸다.(p. 180)

검증 단계를 거친 레시피가 실려 있다는 저자의 말에 신뢰도가 마구마구 상승한다.

 

영국 옥스퍼드의 작은 마을 와틀링턴에 사는 열네 살 소녀 키티는 어느 순간 심한 불안 증세를 보여 학교 다니기를 그만둔다. 아빠 앨은 그런 키티가 걱정돼 딸이 흥미를 붙일 만한 여러 활동을 함께 해 보다가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베이킹에 키티가 흥미를 보이는 모습을 보고 본격적으로 함께 빵을 만든다. 키티가 베이킹에 푹 빠져 빵을 구워대다 보니 먹어야 할 빵의 양은 식구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엄마 케이티의 제안으로 키티는 이웃들에게 넘쳐나는 빵을 나눠준다. 빵을 맛본 이웃들은 너도나도 빵을 주문하겠다고 나서고, 이 일을 계기로 키티와 앨은 빵 구독 서비스를 통해 동네 사람들에게 빵을 판매하기 시작한다.

 

『오렌지 베이커리』는 일상적인 삶을 사는 것조차 힘겨워했던 키티가 베이킹의 세계에 눈을 뜨면서 새로운 열정을 따라 어엿한 베이커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또한 공황 상태에 빠진 딸을 위해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딸 곁에서 함께 빵을 만들며 스스로 행복한 베이커라고 인정하는 경지에 오른 헌신하는 아버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키티와 앨의 오렌지 베이커리는 두 사람 곁에 키티의 엄마 케이티, 언니 아그네스, 오빠 앨버트, 그리고 키티 가족이 키우는 강아지들과 친절하고 사랑 넘치는 이웃들이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 있다. 우선 책을 펼치면 키티와 앨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이어지다가 중반부터는 키티가 직접 개발한 다양한 빵과 페이스트리, 쿠키 등의 레시피가 등장한다. 키티 아빠 앨에게는 그림 그리는 재주도 있는 모양인지 책 전반에 걸쳐 앨이 그린 삽화가 실려 있다. 저자가 직접 그린 삽화가 군데군데 등장하므로 장면을 상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오렌지 베이커리'라는 이름은 빵 구독 서비스를 시작한 후로 키티의 엄마 케이티가 붙여줬다. 키티가 즐겨 입는 오렌지색 멜빵바지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키티는 제빵 관련 책을 탐독하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종종 아빠나 엄마와 함께 여러 베이커리를 방문해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다. 그러던 어느 날, 키티와 앨은 런던에서 혼자 작은 빵집을 운영하는 랄루카를 만나 랄루카에게 빵집 운영의 고충에 대해 듣는다.

“어떨 땐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저 자루 위에 앉아 오븐이 데워지기를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다 문득 생각하지. 내가 무슨 일을 벌인 건가 하고. 키티 네가 손톱을 예쁘게 다듬거나 드레스를 입고 싶다면 이 일은 포기해야 해. 이건 정말 힘든 삶이야. 지금까지 내가 나른 밀가루만 족히 500킬로그램은 될 거야. 빵을 팔면서 동시에 다음 날 팔 빵을 준비해야 하니 어려운 일이지. 난 네가 훌륭한 베이커라고 확신하고, 이것도 아주 맛있어.” 랄루카가 우리가 만든 빵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널 위해서라도 사실 그대로를 말해주고 싶어.”(p. 39)

앨은 키티가 실망했을까 봐 위로해 줄 생각으로 키티를 바라보지만, 키티는 오히려 결의에 찬 모습이다.


빵 구독 서비스와 토요 팝업 매장을 진행하며 어느덧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키티와 앨이지만, 키티 가족에게는 애써 외면하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키티의 교육 문제와 앨의 커리어 문제였다. 일을 완전히 그만두고 키티와 함께 빵을 만드는 앨은 불투명한 앞날에 불안하기만 하다. 어느 날 가게 임대를 제안받은 키티는 앨을 설득해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돈을 모금해 가게를 열기로 한다. 예상했던 날짜보다 훨씬 빠르게 더 많은 돈을 모금한 두 사람. 우여곡절 끝에 오렌지 베이커리 개업 날이 다가오고, 키티와 앨은 첫 영업을 성황리에 마친다.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건 빵뿐이었고, 더 하고 싶은 일은 베이킹뿐이었다.(p. 89)

키티 테이트

오렌지 베이커리는 내 머리를 진정시키고 마음을 안심시키는 장소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다. 정말 행복한 곳이었다.(p. 111)

키티 테이트

빵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늘 어려웠다. 키티가 매번 새로운 종류의 빵을 구웠고, 한번 구운 빵은 다시 굽지 않았기 때문이다.(p. 104)

앨 테이트

 

키티와 앨은 오렌지 베이커리를 운영하면서 각각 좋은 변화를 맞이한다. 키티는 웃음을 되찾았으며, 학교에 다니지 않는 대신 팟캐스트나 다른 수단을 통해 이런저런 각종 지식을 습득하고 있었다. 앨은 키티의 교육에 대한 죄책감에서 해방됐고, 스스로 베이커라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키티가 다른 길을 선택했다는 걸 받아들인 것처럼, 나도 교직에 복귀할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베이킹은 더 이상 딸을 돕는 방편이 아니라 내 새로운 직업이었다.(p. 123)


나는 처음으로 내 이름 옆 직업란에 ‘베이커’라고 적었다. 기분이 좋았다.(p. 124)

앨 테이트

내가 나이 오십에 직업을 바꿔 베이커가 될 줄 꿈에도 몰랐지만, 지금은 베이커가 된 것에 깊이 감사한다.(p. 176)

앨 테이트


마지막 장을 덮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키티의 열정과 배움에 대한 갈망이 한편으론 대단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부럽다는 것이었다. 키티는 열정 하나로 베이킹에 깊이 파고들어 전문가 수준까지 올랐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내가 키티만큼 내 모든 걸 쏟아부은 분야가 하나라도 있던가?

 

물론 언제나 묵묵히 곁에서 있어 주며 헌신한 앨이 있었기에 키티는 훌륭한 베이커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앨은 오직 딸을 지켜내기 위해 멀쩡한 직업도 내던지고 베이킹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마지못해 시작한 베이킹이지만, 앨은 은연중에 키티에게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스스로 베이커라고 부르는 수준에까지 도달했다. 누가 뭐라 해도 이제 그는 자칭 행복한 베이커이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건, 두 사람 뒤에는 여러 나라 베이커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베이킹이라는 공통된 관심사 하나만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키티를 돕고 응원해 줬다. 기술자로서 참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고작 열네 살에 사는 이유를 잃어버린 소녀. 소녀는 몇 년 후 변한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한다.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지 못했던 열네 살 키티를 돌아본다. 그 아이에게 지금의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키티 테이트

 

감동과 재미와 교훈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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