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연수김 2025/06/2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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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
- 다카노 가즈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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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73
🕵️ 대학 시절 친구 다니무라는 밤마다 자신을 쫓아오는 발소리가 들린다며 사와키에게도 확인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정말로 사와키의 등 뒤에서도 의문의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발소리는 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더 가까워지고, 끝내 숨결이 닿을 듯한 거리까지 다가온다.
이 미스터리한 발소리는 단순한 환청일까, 아니면 죄를 따라오는 실체 없는 복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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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여섯 편의 단편이 실린 이 책은 단순한 호러가 아니라 인간의 죄와 윤리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작품이다. 읽는 내내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유는 귀신과 괴담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무서운 것은 평범한 얼굴을 한 인간이었다. 믿었던 가까운 사람들이 배신자가 되고, 연약한 이웃이 학살자가 되는 순간들이 반복된다. 그들이 벌이는 범죄는 너무도 일상적이고 현실적이어서 더 끔찍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단편은 <발소리>였다. 처음에는 다가오는 발소리가 단순한 공포의 상징이자 악역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읽을수록 발소리가 오히려 피해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인식의 전환을 경험하게 된다. 발소리는 단순히 공포를 조성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죄와 그 대가가 물리적으로 되돌아오는 존재였다. 이 단편은 죄를 지은 인간이 끝까지 그 대가를 피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발소리에 두려워했던 나 자신도 결국 그 음침한 그림자 속에서 죄와 마주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느낀 건, 인간이 만들어내는 공포는 귀신보다 훨씬 더 집요하고 오래 남는다는 점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배신이 일어나고, 신뢰는 산산조각난다. 단순히 등골이 서늘한 이야기가 아니라 윤리와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죄는 시간이 흐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다시 돌아와 그 죄를 지은 사람을 따라붙는다.
다카노 가즈아키는 각 단편에서 인간의 어두운 내면과 죄의 무게를 치밀하게 드러낸다. 결말은 쉽게 닫히지 않는다. 밝혀진 진실에도 인물들은 새로운 길을 떠나야 하고, 독자들은 여운 속에 남는다. 특히 <발소리>는 귀신에 대한 공포를 넘어선 죄와 속죄,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경계를 완전히 허문다. 처음엔 내가 사건을 추리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나는 작가가 설계한 미궁 속을 걸어왔다는 걸 마지막에야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섬뜩한 동시에 묘한 쾌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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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모습을 띤 괴물들이 시대와 이름을 바꾸어 언제 다시 이 나라에 발호할지, 그걸 감시하는 것이 펜을 쥔 자의 소임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p.236
괴물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 안의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자리 잡는다. 우리가 진실을 기록하고 들여다보는 이유는 그 괴물들을 감시하고 다시 태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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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까, 아니면 더욱 깊어질까?
🔦 인간은 정말로 용서받을 수 있는 존재일까?
🔦 나는 나 자신 안의 악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출판사 황금가지(@goldenbough_books)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죽은자에게입이있다 #다카노가즈아키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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