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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님의 서재
  • 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
  • 나인경
  • 15,300원 (10%850)
  • 2025-04-30
  • : 1,090
《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은 기억을 잃은 채 살아가는 여자 안과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 고통받는 남자 정한의 이야기다. 이들은 과거 ‘블루진 프로젝트’라는 생체 실험의 피해자이자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이유 없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연인이다. 기억이 사라졌는데도 그리움이 남는다면, 그 감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 소설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우리가 이미 반쯤 들어와 있는 현실처럼 느껴진다. 클라우드, AI 같은 기술에서 기억 보조 장치만 제거하면 곧 오늘이 된다. 그렇기에 더 불편하고 더 두렵다. 읽는 내내 마음에 남는 질문은 ‘내가 나이기 위해 꼭 필요한 기억은 무엇일까’였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이름, 손을 잡은 온기, 함께 웃었던 기억. 그것들을 지워도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을까?

안과 정한은 기억을 다루는 실험의 피해자이자 감정의 저항자다.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서로를 향한다. 기억 없이도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읽고 나면 묘하게 설득된다. 감정은 기억보다 오래 남고,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도 감정은 남는다. 이 책은 그 사실을 차분하고 섬세하게 보여 준다.

《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은 기억과 감정을 통해 자아와 존재를 되묻는다. 잊지 않으려 애쓰는 이름, 너무 아파서 지우고 싶었던 장면, 아무렇지 않게 떠오르는 얼굴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 그렇다면 나를 이루는 기억을 일부러 지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더 편해지기 위해 감정을 없앤다는 건 진짜 자유일까.

책을 덮고 나면 막연한 따뜻함과 쓸쓸함이 동시에 남는다. 기억은 단지 데이터가 아니라 마음의 구조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결국 사람은 마음으로 움직이는 존재임을 조용히 증명한다.

“과거, 그러니까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기억이 없는 AI는 매 순간 다른 말을 해대죠.” -p.70

이 문장은 단순히 AI에 대한 이야기로 보이지만 실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기억 없는 AI가 일관성을 잃듯 감정 없는 기억으로 살아가는 인간도 결국 스스로 무너진다. 우리가 매일 나눠 온 대화, 지켜 온 관계, 쌓아 온 감정은 모두 기억이라는 재료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이 문장은 날카롭게 짚어낸다. 사랑은 그래서 단지 기분이 아니라 정체성이다. 잊었는데도 그리운 것은 그래서 가능하다.


*출판사 허블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도시의소문과영원의말 #나인경 #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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