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성폭행, 살인, 마약, 알콜중독, 자녀유기등의 비인간적이라 ‘괴물성’이라 불릴만한 행위들을 ‘예술가’와 연관지어 독특한 예술가의 기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팬으로서 가지는 도덕적 딜레마는 여전히 그들의 작품을 향유하면서도 죄책감과 은밀한 행복을 느끼게 만든다.작가 클레어 데더러는 예술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며 고민하게 만드는데 이런 문제를 단순히 오스카 와일드식의 유미주의나 혹은 그 반대의 윤리적인 문제로 해석하여 결론 내리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다. (읽는동안 비평서와 에세이중 장르고민을 했다)
많은 비난을 받았을지라도 나 또한 여전히 우디 앨런의 영화를 좋아하고, 나보코프의 글을 읽으며 좋아한다.하지만 책에 언급된 여러 명의 예술가들의 사례 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하는 작가와 강한 거부감을 갖게 되는 사례도 있었는데, 이는 내 마음속에 팬인 경우와 아닌 경우에서 이중적 잣대로 판단했을 수 있어, 더욱 이런 괴물들의 행위에 대해 일관된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작품은 사랑하지만 작가를 사랑할 수 없는 상황을 누군가가 분명한 답을 정해주면 좋겠지만 이또한 비현실적이다.
‘미’beauty는 도덕과 실용이라는 영역에 비해 약하다. 그래서 두 개의 잣대를 들이댔을 때 번번히 무너지기도 한다. 헤로인중독과 포주였던 마일스데이비스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여전히 늘어있는 시간의 내게 좋은 위안이 되는데 도덕적인 이유로 그 음악을 듣지 않을 수 없다.
괴물이 만든 작품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흑백논리로 양자택일이 어려운 이유는 예술이 주는 힘 때문이 아닐까.
예술은 매우 섬세하고 개인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어 그로부터 얻는 경험은 대체되기가 불가하다. 작가가 책의 뒷부분에 언급한 ‘당신이 예술을 소비하는 방식이 당신을 나쁜 사람 혹은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아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p207)’ 라는 문장은 예술을 사랑하는 나같은 이에게 위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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