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이 강렬하고 몰입하기 쉽다. 핵심 단어 세 개를 나열한 각각의 장들은 따로 떼서 읽어도 위화감이 없다. 그런 만큼 빨리 읽히지만 다 읽은 다음 앙금이 많이 남았다.
살인 전과가 있는 주인공 남자, 그 사건을 함께 겪었고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적확하지 않게 느껴지나 사랑 외에 다른 동급생 보람, 그리고 아들 영훈을 주인공에 의해 잃어버린 아주머니로 지칭되는 이 세 사람이 소설 속 핵심 인물이다.
주인공 남자는 우주 알을 통해 미술관에서 모두가 단체관람 하듯이 경험하는 인생을 자유이용권을 가지고 원하는 층 혹은 원하는 그림앞에 설 수 있는 것처럼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여자에게 모든 것을 자세하게 알려주지는 않지만 미래를 알고 있다고 했다.
과거의 이름이 보람이었던 여자는 가족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며 출판사에서 학습만화 편집자로 일하는 사람이다. 남자가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을 제 3자처럼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면 그와 대비되게 사소한 일에도 전전긍긍하고 감정을 넘치도록 쏟아붓는 이 여자가 나는 안쓰럽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영훈의 어머니, 아들의 죽음 후 주인공 남자만을 쫓는 이 아주머니에게는 피로감 마저 느껴졌다. 이렇게 쓰고나니 작가가 인물 묘사를 참 잘 하긴 했구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
주인공 남자가 주장하는 '우주 알' 이야기처럼 소설 전체의 전개는 시간과 관계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나도 인상깊게 본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고 마지막에 딸과 아버지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인생은 해피엔딩이 아닌걸까? 등의 질문을 던진다.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젊을 때 고생하고 안락한 노년을 누리는 것'을 좋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대치되는 생각이다. 이처럼 소설 전체를 끌고가는 커다란 서사의 흐름이 있으면, 그 서사를 이루는 작은 사건들에서도 자꾸만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해 온 시공간과 사건에 대한 다른 시각을 내놓는다. 이미 부모님 만큼 열심히 살아도 부모님처럼 될 수 없는 우리 세대에게 더 피부로 와닿는 질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사와 결말을 중요시 하다보면 행복을 미룰 수 밖에 없으나 지금 이 행복을 미룬다고 미래에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시대이므로-
문학상 수상작으로 소설 뒤에 실린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꼼꼼히 읽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패턴 밖으로 나가려는 인간의 몸부림 같은 건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내 마음에 와서 박힌 문장은 바로 이 문장이다.
여자는 조수석에 앉아 생각했다. 자식을 낳고 키운다는 것, 그리고 그 자식을 폭력적으로 잃는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에 따르면 그 자식을 폭력적으로 잃은 사람은 당연히 영훈의 어머니다. 하지만 나는 보람과 보람의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딸은 자신을 너무나 지긋지긋하게 만드는 제 육신의 창조자를 벗어나고자 발버둥친다.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낳고 키운 보람이 무색하게 매정한 딸년이 원망스럽겠으나 그 자식을 폭력적으로 잃게 만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라는 생각을 했다. 저 문장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일한 인물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고등학교 2학년에서 멈춰있는 영훈도 계속해서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더라면 다른 의미의 잃어버린 자식이 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등장인물들의 삶은 어두운 그림자가 일상, 빛나는 순간은 말 그대로 순간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의 말미에 남자가 보람에게 남긴 말이 참 많이 와닿는다.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그렇게 할 거야, 같은 말들.
그믐, 달이 태양과 같이 뜨고 지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날.
대부분이 어둡고 아주 짧은 순간 빛나는 우리의 삶.
길지도 않고, 타인의 눈에는 딱히 특별해 보이지도 않았던 그 순간을 위해 다시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 이 남자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이 책을 읽고난 다음에는 빛나는 순간이 꼭 내 생의 마지막에 오지 않더라도 내 삶이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결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