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의 단편을 묶은 줌파 라히리의 소설집.
기억에 남는 작품은 질병 통역사와 표제작인 축복받은 집. 빨간 책방에서는 다른 단편을 최고로 꼽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축복받은 집을 첫 번째로 꼽고싶다.
축복받은 집은 줌파 라히리의 다른 작품에서도 그렇듯이 인도인 이민자 중에서도 신혼부부의 이야기이다. 아내인 트윙클은 자신들의 종교와 무관하게 이전 집주인이 남긴 성모상 같은 성물들을 버리지 않고 수집하기 시작한다. 남편의 거리낌이 느껴짐에도 너무나도 해맑게 보물찾기에 나서는 트윙클과 결국 그런 아내를 이길 수 없는 남편.
남편의 '어쩌지 못하는' 심정이 너무 잘 느껴져서 이 책을 읽은 지 꽤 오래 지났음에도 사건의 바깥에서 관찰자로 느끼는 불안감이라고 하기엔 무겁지만 어쨌든 조마조마했던 심정이 생생하다.
트윙클은 눈치가 없는 여자인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남편을 골려주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그런 아내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 때문인걸까?
그런게 그 남편의 사랑하는 방식이라면 나는 트윙클이 불행할 것 같았다.
이 이야기 속 남편은 스스로를 강자의 입장에 놓고 약자인 트윙클을 배려하고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뭔가 동등한 위치가 아닌 측은지심 또는 베푸는 사랑처럼 느껴졌다.
동등한 위치에서의 상호 배려가 아닌 강자의 약자에 대한 배려.
드러낸 인종차별을 당하지는 않지만 서구 사회에서 이민자의 위치도 그러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