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참 재미있게 읽고 있다. 책의 내용이 원주의 생활을 중심으로 쓰여져 있기에 원주에 살고 있는 내가 더욱 정감있게 느끼는지 모르겠다. 평소 박시인의 시를 좋아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꺼번에 다 읽기가 아까워 조금씩 읽는다. 아니 한꺼번에 몽조리 소화하기가 어려운건지도 모르겠다. 몽조리 소화하려는 조급한 강박증이 내 속에 숨어있는걸 이 책을 읽으며 '소급적으로' 발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재미라는 두리뭉실한 말로, '기의없는 기표'로 표현하기에는 좀 밋밋하다. 제목대로 가슴 밑바닥에 설렘이 일어난다고 할까. 가을이 신호등에 걸려 있다는 박시인의 표현이 떠오른다.
책에서 소개하는 원주 가볼만한 곳 가운데, 거돈사 절터가 있다. 거돈사 절터에서 현계산을 끼고 어재를 넘어오면 손곡이다. 책에서도 소개되는 조선시대 삼당시인이자 허균의 스승이기도 했던 손곡 이달이 기거했던 곳이다. 손곡 마을회관 옆에 옛날 주막 분위기가 조금은 남아있는 가게가 있다. 거기서 막걸리 마시던 풍경이 떠오른다. 비닐을 둘러쳐 가게 공간을 넓힌 구석에 옹기종기 마주앉아 주막 아주머님께 부탁드려 꽁치통조림을 따서 김치에 조림한 안주를 앞에 놓고, 지인 몇 분과 찬 공기를 마시며 눈길을 걸어와 마시던 치악산 막걸리, 그 분위기가 한꺼번에 버무려진 그런 감칠맛이 설렘과 더불어 느껴지는 그런 맛이 이 책에서 돌이켜 느껴진다.
다시 한 번 느끼는데 박시인의 시와 글들은 낯선 문자들의 돌연한 출현으로 어리둥절함, 생뚱맞음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오랫동안 만나고 싶었던 것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 기표들의 우연한 듯한 불가피한 불륜적 조우, '낯선 곳에서 나를 발견하다'란 책제목이 있던가, 내 속에 있던 안타까움, 무심히 아니 냉정하게 잘라냈던 나의 '보물'들이 자기 존재를 외치며 되살아난다고 할까.
어쨋든 읽기에 편하고 나를 돌이켜 보게 해 좋다. 그런데 이런 걸 어떻게 다 생각해냈을까...^^ 옛날 앙케이트 조사가 도입된 초기 무렵, 집을 방문해 설문지를 내밀면 집주인 왈, "내가 여기 살고 있는걸 어떻게 아셨나요?"라고 물었다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박시인은 이 책의 내용이 자신을 알몸으로 드러내는 느낌이라 했는데, 내가 볼 때 발가벗은 마음이 적절한 형상화의 의상, 객관적 제3자적 시각화를 통해 나름의 의상을 걸쳤다고 여겨진다. 그 결과 자신의 모습을 삶의 순간순간, 혹은 고비마다 나름대로 점검해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기와 비슷하면서도 객관화된 마음의 점검이랄까. 때로는 희화화시키기도 하고, 그를 통해 넘어서려 하기도 하고,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토로하면서 그것을 정제하기도 하는 비슷하면서도 다양한 모습을 느꼈다.
이런 글이 글쓰는이 자신에게, 독자를 과도하게 의식하지 않을 때, 자기 치유가 되는게 아닌가해서 약간 부러웠다. 시를 쓰는 사이사이 시적 형상화가 되기 전의 점검일 수도 있고 등등의 의미에서 시인 스스로 이런 글을 더 이상 안쓴다고 선언하는 것보다는 유예를 두는게 어떨지 생각해봤다.
어쨌든 삶의 공백이라 느끼던 것들이 그냥 공백은 아니라는 걸, 곱씹어 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