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 슈의 <크리티컬 비즈니스 패러다임>은 비즈니스 활동의 근본을 들여다보며 철학적으로 고민하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도전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설명하는 도서에요. 기업의 성공 방정식을 소비자 심리 분석에 바탕을 둔다면 어느 선까지는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나아가기 힘든 이유를 특유의 통찰력을 들어 표현하고 있죠.
소비자 심리에 부응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지만, 이렇게 효율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게 과연 미래성이 있는 사고방식인지 한 번쯤 생각하는 계기를 던져주고 있답니다. 더불어 지금의 기업들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있죠.
올해 마케팅 심리 관련 강의를 듣고 있는데요, 소비자 심리에 대해서 배우면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비즈니스와 인간관계의 원리를 나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상식을 뒤집는 것이야말로 미래지향적인 기업이 가져야 하는 자세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구글이나 테슬라, 파타고니아 같은 회사들이 어떻게 기존과는 다른 비판적 시각으로 시장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비즈니스가 우리의 삶과 어떤 철학적인 연결 고리가 있는지를 다루는 책이니까 경제, 경영에 대해서 전혀 몰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답니다.
대개 마케팅이라고 하면 고객의 심리를 분석하고 숨겨진 니즈를 찾아내어 충족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해요. 심지어 한 번 실수를 했더라도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오히려 고객의 신뢰도가 이전보다 확고해질 수 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야마구치 슈는 이런 접근 방식이 미래 사업에는 한계가 있다고 해요.
생각해 보면 우리 소비자들이 원하는 건 대부분 이전의 경험 혹은 상상할 수 있는 것들 안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러니 아무리 고객 심리를 열심히 분석해 봤자, 결국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틀 안에서만 움직이게 될 확률이 높은 거죠.
그래서 작가는 크리티컬 비즈니스라는 개념을 가지고 나왔어요. 이는 고객의 필요에 반응하는 수준을 넘어서 아직까지 생각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가치를 기업이 먼저 제안하고 창조하는 방식이에요. 즉 무언가를 많이 팔아야겠다는 측면이 아니라 우리 기업의 존재 이유, 세상에 기여하는 방식에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비즈니스를 하는 거라고 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크리티컬 비즈니스 패러다임>은 고객 심리 분석을 넘어선 비전이 어떻게 시장을 바꾸었는지 예시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어요.
구글은 "검색 엔진을 멋지게 만들어보자!"는 식으로 출발한 게 아니에요. 전 세계의 모든 정보를 누구나 쉽게 찾아서 쓸 수 있게 하자는 비전을 가지고 시작했죠. 뭘 검색하고 싶어 하는지를 분석하기보다는 접근성 자체를 바꿈으로써 나가아서는 세상을 바꾼 거죠.
테슬라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 세상을 바꿔보자는 목표를 갖고 있어요. 제가 어릴 때부터 화석 에너지의 고갈과 관련한 이슈가 계속되어 왔음에도 사람들은 오히려 점점 더 큰 차- 연료를 많이 소모하는 차를 원했잖아요. 그런데 테슬라는 인류의 미래라는 윤리적 가치를 내세움으로써, 고객들이 전기차를 구입하고 나아가서는 미래를 생각했다는 만족감을 갖게 했어요.
이런 예를 들어가면서 <크리티컬 비즈니스 패러다임>은 우리가 진짜 찾아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있어요. 고객이 뭘 원하는지 분석하기보다는 고객이 앞으로 무얼 신념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먼저 제시한 셈이죠. 이게 바로 시장을 창조하는 힘이라고 해요.
책을 읽다 보니 ESG 경영이 자연스레 떠올랐어요. 작가가 이야기하는 사회적 합의가 아직 없는 어젠다를 가지고 시장을 이끌어가는 방식은 요즘 기업들이 왜 ESG에 집중해야 하는지와 연결되고 있거든요. 책에서 기업은 이윤만 좇는 경제적인 주체가 아니라 사회와 인류 전체에 미치는 영향 및 윤리적 책임과 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요.
이런 관점은 ESG가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경영 철학이 되어야 한다는 점과 딱 맞아떨어지는 거 같아요. 환경을 생각하고 사회에 기여하며 투명하게 운영하는 건 국가나 투자가들의 규제 혹은 제한 때문이 아니라 기업 스스로가 지향해야 하는 본질적인 가치에서 나와야 한다는 거죠.
사업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마케팅 업계 종사자도 아닌데…그렇다면 이 책을 굳이 읽을 필요 없는 건 아닐까 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읽어보니까 <크리티컬 비즈니스 패러다임>은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도서가 아니더라고요.
'제6장 활동가를 위한 10개의 총알'이라는 챕터가 있는데요, 이 파트를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고요. 소비자 심리를 공부할 때에도 이건 마케팅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인간 심리에도 적용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이 책도 마찬가지였죠.
7장부터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 소비자들이 이런 크리티컬한 사고방식을 일상에 적용하면서 성장시킬 수 있는지를 상세히 알려주더라고요. 그래서 <크리티컬 비즈니스 패러다임>은 비즈니스 세계의 혁신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 뿌리에는 개개인의 삶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도 했어요.
야마구치 슈의 <크리티컬 비즈니스 패러다임>은 비즈니스 관점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개인의 인생, 소비자로서의 크리티컬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도록 한 교양 비즈니스 철학서라 하겠어요.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마케팅의 본질과 기업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