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shame)이라는 단어는 '가리다, 숨기다'를 뜻하는 원시 인도 유럽어 어근 스켐(skem)에서 나왔다. 수치스러워하는 사람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외면하거나 숨거나 남들과 거리를 두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p.77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수치심이란 어떤 일을 행한 게 몹시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른다는 의미라고 생각해 왔어요. 하지만 그렇게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려면 반드시 기준이 되는 개념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곳에 그 기준을 두어야 할까요?
때로는 세상에 당당하고 싶은 나이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올바른 기준'이라는 것에 갇혀서 고민하고 안으로 움츠러드는 건 아닐까요?
공과금도 내기 어려운 판이지만 도저히 요리할 기력이 없어서 저녁마다 배달 음식을 먹다 보면, 당신이 가난하고 배고픈 건 전부 스스로의 무책임 탓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올 수도 있다. 당신이 겪는 어려움은 남들이 부딪힌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고립된 무력감이야말로 당신과 지구에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을 묶어주는 공통분모다.
-p.31
사실 부끄러운 일이기는 하지만(역설적이게도) 이 책을 쓴 저자에 대해서 완전히 마음을 열지는 못했어요. 저자가 성적 소수자이기 때문은 아니고, 아직까지도 성적 지향을 외부에 대놓고 공개한다는 거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는 나라는 사람의 성향 때문이니까, 이런 점은 접어두고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어요. 처음에는 후딱 읽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버릴 건 버리면 되는 책이라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여행을 가면서도 들고 가야 할 정도로 소중하고 의미 있는 책이었죠.
저자는 수치심이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이야기하고 여기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세히 논하고 있어요. 물론 책을 읽다 보면 내 생각과 달라 부딛힐 때도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옳은 말씀'에 저도 모르고 다시 책을 열게 되었어요.
수치심은 혐오, 선입견, 차별과 깊은 관계가 있어요. 그렇기에 이미 어떠한 틀, 프레임을 갖고 있는 저로서는 - 내 기준으로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까지 수용해야 한다는 사실이 혼란스러웠어요.
그렇지만 분명 이런 종류의 시선으로 인해 누군가는 분명 힘들어할 거예요. 그리고 차별, 편견으로 점철되는 수치심으로 인해서 위축되고 괴로워할 테고요. 이제는 어느 정도 의연해졌지만, 저 역시 그런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었어요.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넘어서 불쾌한 경험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부끄럽다, 수치스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그렇다고 모두 이겨냈다고 하기에는 좀 부족한 면이 있어요. 왜냐하면 저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던지 말던 지하는 태도로 살아왔거든요.
편견 어린 시선으로 본 건 오히려 피를 나눈 사람들이었고, 어린 나의 (강요당한) 희생으로 자신들이 살아왔으면서 오히려 저를 제 몫을 못하는 존재로 보았어요. 그렇기에 <수치심 버리기 연습>의 예시로서 나온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워했을지는 알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역시 누군가를 자신의 잣대로 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아니 다른 방향에서 누군가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시선을 보내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보았어요. 어쩌면 그전에는 아니 지금도 그러고 있을지도 몰라요.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기보다 '나 자신'을 수용하는 게 더욱 힘들 거예요. 혐오와 갈등이 만연한 지금은 더욱 그렇고요. 자신의 모습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당당하게 설 수 있어야 수치심을 버릴 수 있어요
.
***해야 한다는 기준이 잘못되었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나요?
여자라면 날씬해야 한다거나 이성애자만이 옳다거나 장애인은 웬만하면 집에 있어야 한다거나... 그런 거 말이에요.
성소수자인 저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내용이 많아서 <수치심 버리기 연습>이 조금 불편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에게 있는 무언가를 찾고 스스로 서기 위해서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