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맥브라이드의 소설은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예전에 <어메이징 브루클린>을 만났을 때에도 초반이 약간 힘들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아무래도 시대적, 사회적 배경에 제가 녹아들기까지 어느 정도 워밍업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하지만 모셰가 누구인지, 초나, 도도, 네이트 등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이해하고 난 후에는 물 흐르듯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제임스 맥브라이드
현대 미국 문학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가 중 하나입니다. 이전의 <어메이징 브루클린>과 마찬가지로 <하늘과 땅 식료품점>은 인종차별과 이민자들의 삶, 1920년대의 팍팍했던 삶 속에서도 이를 이겨내며 살아갔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잘 담았습니다.
<하늘과 땅 식료품점>은 아마존과 반스 앤 노블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다양한 추천사가 함께하는 도서라 어렵지는 않을까, 혹은 요란한 빈 수레는 아닐까 걱정했던 거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임스 맥브라이드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믿고 읽어 나갔습니다.
이 소설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화하기로 결정할 정도로 매력적인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펜실베이니아의 '치킨 힐'을 배경으로 하여 복잡한 인간상을 그려내고 있는데, 그들에게 익숙해지는데 필요했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금세 빠져들어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늘과 땅 식료품점
소설은 1972년 펜실베이니아에서 발견된 백골 시신으로 시작합니다. 경찰은 노인 말라기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찾아옵니다. 시신과 함께 발견된 메주자(팬던트 비슷하게 생긴)에 히브리어로 그를 지목하는 듯한 문구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허리케인이 지나간 뒤, 노인 말라기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다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소설은 말라기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댄서였던 시절인 1920년대로 거슬러갑니다. 발견된 백골은 누구이며 왜 메주자가 그의 곁에 있었는지 궁금증을 안고서 책을 읽어갔습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추리물이 아닙니다. 히틀러가 아직 공직에 오르기도 전의 시기에 이민자와 유색인종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흑인과 유대인, 이민자들이 함께 살아가면서 때로는 이해하고, 때로는 경계하면서 조금씩 연대를 갖게 됩니다. 쵸나의 하늘과 땅 식료품점이 중심이 되어서 사람들은 점점 함께 하게 됩니다. 아직까지 미국에 평등이 없고 서로의 이익을 추구하던 시기였기에 더욱 소중한 관계였습니다.
책 속으로
사고로 청력을 잃은 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까지 세상을 떠나 오갈 데 없게 된 흑인 소년 도도는 모셰에게 맡겨집니다. 모셰는 자신이 운영하는 극장 한구석을 내주고 거기서 생활하게 하지만 초나는 그 사실에 분개하며 당장 아이를 데리러 오라고 합니다.
정부는 도도를 특수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하지만, 학교라고 표현하는 그곳은 악명 높은 감금시설 '팬허스트 주립 정신병원'이었습니다. 이후에 시설의 묘사가 자세히 등장하는데, 멀쩡한 사람도 정신질환을 앓을 수밖에 없게 될 정도로 파렴치한 곳입니다.
초나는 평소 모든 이들을 사랑하며 화합하기를 원했고, 그런 그녀를 모셰는 깊이 사랑했습니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 초나에게 도도는 마치 자신의 아이와 같은 존재였고 마음 깊이 사랑했습니다. 인종과 관계없이 모두가 평화롭기를 원했기에 KKK단을 비난하는 글을 쓰곤 했습니다.
그렇기에 백인 권력자들은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고, 설상가상 고등학생 때부터 초나를 마음에 두었던 의사 '닥'은 애증을 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날의 사건이 벌어지고 맙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도도는 정신병원에 잡혀들어가게 되고, 마을 사람들은 아이를 구출하려 합니다.
이 소설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각 캐릭터마다 인생을 품고 있습니다.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방식이기는 하지만, 작가는 하나하나에 사연을 부여하여 모든 이들이 생동감 있게 움직이곤 합니다. 각자의 삶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얽히면서 살아가는 게 사람이고 인생이기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2020년대에 만나는 1920년대 이야기
<하늘과 땅 식료품점>은 미국 사회에서의 인종 간의 편견과 경계, 갈등을 깊이 다룹니다. 생명을 부여받은 캐릭터는 많지만 소설의 말미에서 모두의 끝을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이후로의 희망과 앞으로도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인생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흑인과 유대인으로 갈리는 게 아니라 어떤 나라에서 왔는지에 따라서도 서로 차별을 하는 게 참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화합합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나가면서도 스스로를 구원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이겨냅니다.
백인 남성인 '닥'의 행동에 분노하고 소년 '도도'를 보며 안타까웠습니다. 초나를 마음속 깊이 사랑한 남자 모셰의 이야기까지도 모두 감정을 흔들어놓았습니다. 차별과 폭력이 난무하는 스토리가 1920년~30년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면서 모두 끝났다고 할 수 없다는 게 정말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