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판단, 충분한 고민, 정보를 모아서 분석하여 정리하는 힘.
이런 모든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도 정말 얼토당토않은 사기에 걸려들거나 음모론에 휘말리는 경우를 뉴스에서 종종 보곤 합니다. 저렇게 똑똑한 사람이 그런 짓을 했다고? 혹시 한 패 아니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죠.
때로는 오히려 그들이 옳은 말을 하는데도,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 - 때로는 그게 편향된 사고라 할지라도 -에 비추어 틀리다고 판단하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판단할 때는 그동안 쌓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개인의 가벼운 의견이나 판단과 관련된 일이라면 시행착오를 통해서 하나하나 배워나가면 됩니다. 하지만 이런 잘못된 판단과 결정은 인류의 역사를 흔들기도 하고, 삶을 위태롭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넓은 시야를 가지고 다각도로 분석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페이크와 팩트
이 책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렇게 좋은 책은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특히 SNS와 유튜브 등의 영상의 활용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기에, 올바른 정보와 그렇지 않은 걸 가리는 눈이 필요합니다. 예전의 언론 조작 정도는 우스울 정도로 경중을 따지지 않는 가짜 뉴스가 활보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 잘못된 내용을 받아들이면 그 후로는 알고리즘이 알아서 계속 비슷비슷한 자극적인 혹은 잘못된 정보를 물어옵니다.
내가 원하는 것들만을 추려서 보고 알고리즘은 - 편리하게도 - 관심사를 가져다준다는 건 마냥 좋은 건 아닙니다. 왜,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똑같은 현상을 보아도 각자의 기준에 따라서 보고 판단하는데, 애초부터 편향된 정보만을 받아들이는 건 정말 위험합니다.
굳이 국제 정세나 경제 쪽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가짜 건강 정보 같은 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의사를 멀리하고 자연치유를 가까이하라는 식의 글은 정말 많이 보셨을 겁니다. 예를 들어 당뇨에 어떤 식물 잎이 좋다더라는 소리를 들으면 처방을 끊고 맹신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반대하면 정말 그러한가에 대한 생각을 하기보다는 '해당 식물 잎'을 검색해서 나온 가짜 정보를 보여주면서, 거 봐라. 내 말이 맞지 않느냐고 합니다. 이는 이미 식물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기 때문에 나온 결과입니다. <페이크와 팩트>는 이와 같은 오류를 지적하며 어떻게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지를 다룹니다.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
<페이크와 팩트>의 저자는 물리학자이며 생물 통계학자, 암 연구자입니다. 현장에서 많은 암 환자들을 만났으며 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자연치유 혹은 대체 의학으로 그들에게 금전적인 이득을 꾀하려는 사람이 많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수도에 불소를 포함하는 것에 대한 반대, 백신 접종 반대 등은 음모론과 함께 한다는 사실에 개탄하며 논문과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편견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지만
바른 판단을 하기 위한 노력과 자신의 태도를 검증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과학은 팩트만 말한다는 사실 역시 진실이 아닙니다.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옳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여기기보다는 이게 맞을 텐데 하는 기대감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과학', '연구', '검증'이라는 단어가 활개치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건강보조식품을 구입할 때 인체적용시험 결과가 첨부된 걸 보셨을 겁니다. 이때 참여 인원을 확인해 본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30~40대 여성 36명을 대상으로 했다는 단서가 있다면 거의 무의미하다고 보아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실험 군과 대조군으로 나누어 테스트하는데, 각각 18명인 셈이 됩니다. 그리고 실험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가 대학에 다닐 때에는 가장 큰 결괏값과 작은 결괏값 (혹은 그룹)은 제외하였습니다. 그러면 결국 16명의 데이터입니다. 160명도 1,600명도 아닌 16명이 참여한 겁니다. 만일 70%가량에서 긍정적인 데이터가 나왔다면 11명에서만 나타난 결과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이런 내용을 디테일하게 확인하지 않습니다. 단지 인체적용시험 결과가 있으니까 꾸준히 먹으면 효과가 있겠구나 하면서 받아들입니다. 물론 먹었을 때 컨디션이 달라진다거나 변화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모두 다 플라세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정보를 받아들일 때는 이게 팩트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고의로 속이는 자들
세상에는 일부러 결과를 누락시키거나 과장하여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이득을 취하려는 집단이 상당히 많습니다. 앞서 거론한 거처럼 상식이 부족하거나 배움이 짧아서 걸려드는 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뻔한 수작에 속았다며 피해자를 비난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어제도 속았고, 지금도 속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안전과 세상을 올바로 보는 눈을 키우기 위해서 <페이크와 팩트>를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총평
들어가는 글만을 읽었는데도, 이렇게 좋은 책은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께도 제법 되고 가끔 어려운 용어나 설명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저도 사실 중간에 확률 부분에서 잘 이해가 안 가서 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만약 읽다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아아... 그렇구나 하면서 일단 넘어가셔도 좋습니다. 건너뛰며 읽는다 하더라도 얻어지는 게 많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정말 논리 정연하고 딱딱 떨어지는 문장을 만나서 정말 좋았습니다.
너무나 깔끔하게 잘 나와서 번역가가 누군가 책 뒷면을 확인했을 정도로 정돈된 도서입니다. 따라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싶거나 속지 않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자 한다면 <페이크와 팩트>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편협하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은 어리석으며
감히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이다.
- 윌리엄 드러먼드 오브 로지아몬드 (책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