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빚쟁이들에게 쫓겨서 한 이사였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아파트가 아닌 시골집이었다.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방 두 칸,
두 개 중 조금 더 큰 방 앞에 놓여 있는 작은 마루가 전부였다.
부엌이 밖에 있는 것도 놀라운데 화장실은 더 멀리 떨어져 있었다.
더군다나 재래식이었다.
태어나 처음 보는 화장실이었다.
아래를 쳐다보면 까마득했다.
혹시라도 빠질까 봐 있는 힘껏 다리를 양옆으로 벌렸다.
그래도 낮에는 괜찮았다.
밤에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하면 통증보다 화장실이 무서워 눈물이 났다.
배를 움켜잡고 찔끔찔끔 울고 있으면 언니가 나를 살살 달래 데리고 나왔다.
작은 마루 위에 선 언니는 화장실을 향해 손전등을 비춰 주었다.
내가 비틀비틀 걸어 화장실로 들어가면 노래도 불러주었다.
손전등 불빛과 노래에 의지한 채 힘껏 배에 힘을 주곤 했다.
엄마는 매일 쓸고 닦고 잡초를 제거했지만
순식간에 생기는 거미줄은 집을 어수선하게 만들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벌레들은 질려버리게 했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학교, 친구들을 떠난 것도 속상한데
우중충하고 지저분한 시골집 때문에 더 우울했다.
다들 하나쯤은 있다는 시골 할머니댁은
친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애초에 없었고,
외가집은 너무 멀어 자주 가지 못해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시골집이 바로 이 집이었으니
시골집에 대한 기억, 느낌이 좋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집,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를 구입해 읽은 이유는
작가님에 대한 애정 하나 때문이었다.
작가님은 왜? 굳이? 시골집에서 살고 싶었을까?
p26 시골에서 살고 싶었다. 오로지 그뿐이었다.
응? 하지만 하고 싶은 것만큼 강력한 이유가 있을까?
그렇다면 해야지.
살아도 후회, 안 살아도 후회라면 살아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
살던 집을 처분하고,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새롭게 살 시골집을 찾고,
그 시골집을 고치고,
새로운 (시골)이웃을 만나고.
만만치 않은 이 과정이 작가님에게는 p34그 과정 자체가 시골집에 사는 특별함의 일부인 것 같았다.
나는 도시에서 좀 더 쉽고 가깝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 좋았다.
그것을 누릴 때 좀 더 근사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p51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다운 삶이란 무엇이며 그렇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직업, 집의 종류, 사는 지역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시골이든 도시든
시골집이든 아파트든 주택이든
p59 우리는 다른 길을 걸으니 다른 것을 얻을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각자의 소신대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좋은 기억의 힘으로 자기 앞에 주어진 생을 기꺼이 끌어안고 나아갔으면 한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p160 살아 있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려고 부단히 애쓰지만 어쩌면 살아 있음 자체가 성취인지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 어디에 살든 살아있음 자체가 행복이지.
감사하게도 책 속의 시골집에 직접 가 본 적이 있다.
작가님과 잘 어울리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집이었다.
이번에 책을 읽으며 그때는 몰랐던 시골집의 과정을 하나하나 볼 수 있어 참 좋았다.
거기에 시골집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과 애정까지.
그래서 나는 작가님처럼 시골집에서 살 수 있을까?
아직은 그렇다. 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 무엇도 단언할 수 없기에
어쩌면 나도 언젠가. 정도로 대답을 바꿔보려고 한다.
아니지. 혹시 또 모르겠다.
‘시골집,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라고 외칠 날이 올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