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철들 필요 없어!
나는 어른스러운 아이가 싫다.
어른스러운 아이를 신사, 숙녀라는 말로 칭찬하는 사람들도 있고,
배려와 이해심이 깊다며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단어는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어른스러운 아이를 만나게 되면 저 아이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고 답답할까? 라는 생각을 한다. 나 역시 어른스러운 아이었으니까.
나는 ‘너도 하늘말나리야’를 읽으며 미르, 바우, 소희 모두에게 애정을 담아 응원했지만 눈길이 머물고 마음이 가던 아이는 소희였다. 일기장에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털어놓던 소희가 그저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다. 가끔은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도 좋으련만 소희는 그러지 못했다. 물론 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들이 많았지만 최소한 친구들에게만큼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으면 했다. 하지만 소희는 결국 그러지 못한 채 작은집으로 떠나고 말았다.
소희는 작은집에서는 작은엄마와 사촌 동생들 눈치를 보느라, 친엄마와 함께 산 후에는 오래 떨어져 산 엄마와 새아빠, 동생들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다. 마음 속으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쏟아내지만 그것을 밖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키워주신 할머니의 죽음, 작은집에서의 생활, 갑자기 만난 엄마와 새아빠 그리고 새로운 학교와 친구들. 15살의 소희는 이것만으로 충분히 힘들고 벅찰텐데 자신의 마음을 그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않는다. 달밭마을 친구인 바우와 미르, 새로 사귄 친구 채경에게까지도.
소희는 자신의 감정은 표현하지 못한 채 상대방의 행동과 말을 자신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또 상처받는다. 자신이 상대에게 기대하는 것,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궁금한 것을 제대로 물어보지 못한다. 15살 소희의 모습에서 15살의 내가 보였다. 소희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 너무나 잘 알 수 있어 마음이 더 아팠다.
“엄마에게 직접 물어본거야? 솔직하게 물어봐.”
“그런 식의 방황이 아니라 차라리 대놓고 대들어.”
“몰래 눈을 흘기거나 문을 쾅쾅 닫지 말고, 차라리 소리를 질러버려.”
하지만 나도 엄마에게 직접 물어보지 못했다. 나도 대들고 소리지르지 못한 채 옷을 이상하게 입거나 머리를 이상하게 자르는 행동으로 엄마를 괴롭혔다. 그러나 내가 하지 못했던 것을 소희는 했다. 엄마에게 소리지르며 물어봤고,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털어놓았다.
달밭마을에서 소희는 자신의 일기장에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 그곳에 웅크리고 있었다.
작은집으로 온 소희는 동생들과 함께 사는 방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엄마에게로 온 소희는 넓고 좋은 방에 있었지만 그 방의 진짜 주인이 되지 못한 채 방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소희는 미르가 선물해 준 일기장의 속지를 채워넣으며 그 속지 안에 힘들고 괴로운 마음 뿐만 아니라 행복한 일도 기록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소희는 자신의 일기장, 방 속에 숨지 않고 자신의 마음의 진짜 주인이 되어 일기장을 채워나갈 것이다.
너도 하늘말나리야에서 소희에게 응원을 보내며 마음 한구석이 저려왔는데 이제는 개운한 마음으로 소희에게 응원을 보내줄 수 있다.
순간 소희는 자기 혼자 서늘한 그늘 속에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과제한다고 거짓말하고 나온 자신과 비교됐다. 어둠 속에서 환하고 따뜻한 불이 새어 나오는 남의 집 창문을 바라보는 듯 한 느낌이 선명했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 기분. 겉도는 기분. 좋은 옷과 좋은 집에서 살지만 마음은 가난한 기분이었을 소희의 마음이 느껴져 내 마음도 아팠다.
너는 내 족쇄였어.
자식에게 족쇄라는 말을 한 소희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 역시 엄마이기에 소희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의 불행이나 고통을 외면하라는 게 아니라 그걸 네 것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는 말이야. 엄마는 엄마고 너는 너야. 우리는 모두 각자 인생을 사는거야.
당연히 부모와 자식, 가족으로 묶이면 서로의 불행과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그걸 내 것으로 만들어 나를 가두고 괴롭히지 말자. 서로의 불행과 고통을 함께 느끼며 슬퍼하고 다독이고 도와주되 나의 마음을 꼭 지켜야 한다. 참 어려운 일이지만.
해당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료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