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는 SF소설, 그것도 인문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하니 범상치 않을 것이라 짐작은 했다. 그 시작은 노벨문학상 수상을 앞두고 있던 시인 ‘왕후’의 갑작스러운 자살이었다. 갑자기 겉으로 봐서는 전혀 납득이 되지 않은 자살의 배후를 파헤치던 친구 ‘리푸레이’는 죽음 뒤에 도사리고 있던 기업 ‘제국’과 최고경영자 ‘왕’의 어두운 이면을 직시하게 된다. ‘제국’과 ‘왕’은 엄청난 기술을 개발해왔다. 의식을 공유하는 칩을 뇌에 이식하게 하여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통합, 발전시켜왔다고 평가받는 집단과 인물이었다. 하지만 ‘왕’은 ‘인류통합과 영생’이라는 자신의 목표 실현을 위해 은밀히 언어를 제거해가며 인간에게서 서정성을 없애고자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기본 개념으로 등장하는 이동영혼, 의식공동체 등과 ‘기술을 통한 인류의식의 통합’이 다소 황당하게 들리는 면이 없지 않았지만, 소설을 지금 중국 사회상에서 비춰보며 그 맥락을 짚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아시다시피 현재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여러 분야에서 경제와 기술적인 발전을 이룩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 황제에 버금가는 권력자 시진핑과 그 정치체제 하에서 중국인들은 많은 정보를 통제당하고 살아가고 있다. 공산당 일당독재를 통해 중국 인민들은 엄청난 경제성장과 미국을 위협하는 세계적인 국가로 우뚝 선 중국을 얻었지만, 그들이 소설 속 인류처럼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며칠 전에는 중국 정부에서 지나친 상업화를 이유로 크리스마스를 단속한다는 기사를 접하며 들었던 씁쓸한 마음이 다시 떠올랐다.
또 자살한 시인이 ‘제국’의 철저한 조정과 통제 속에 작품을 쓴 것으로 나오는데 ‘문학예술은 반드시 절대적인 당의 지도와 감독 아래에 놓여야 한다.’라는 중국 공산당의 원칙이 여전히 중국의 문화예술을 더욱 은밀하면서도 더욱 확고하게 지배하고 있는 현 상황이 이 소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보였다. (중국의 최고 배우 ‘판빙빙’이 세금탈루 혐의로 한 순간에 날아 가버린 사건도 그 일례로 들 수 있겠다.)
그리고 자살로 ‘제국’의 음모에 온 몸으로 저항을 표출한 시인 ‘왕후’는 초원 출신으로 소설 속에서 묘사되어 있는데, 그가 혹시 한창 중국이 탄압하고 있는 신장이나 티벳 출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신장이나 티벳에서는 많은 이들이 자살이나 죽음을 무릅쓰는 행동으로 중국 정부의 탄압에 저항과 독립을 부르짖고 있으니 말이다.
모든 이야기는 현실을 반영한다. 때로는 현실보다 더 가혹하다. 그렇기에 때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을 더 직시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문학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우리가 직시를 못하는 현실의 엄청난 민낯을 소설이나 드라마를 통해서는 조금이라도 들여다보게 하니 말이다. ‘중국이 그렇다면 또 한국은 얼마나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가?’하고 생각이 천천히 이어진다.
이렇게 보면 이 소설은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설정을 통해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더없이 불온한 책이 아닐 수 없다. 그 점이 나에게는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또 이 소설이 마지막으로 다가갈수록 떠오르는 건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였다. 영화에서 부모와 사회적 기대를 벗어나 연극배우를 꿈꾸는 학생은 죽음을 택한다. 이 소설에서 시인이 죽음을 택한 것처럼 말이다. 이 비극적 사건을 계기로 키팅 선생님은 학교에서 쫓겨나지만 학생들은 책상에 올라가서 시를 소리 높여 읊으며, 성적과 성공이 전부가 아닌 자신 삶을 살아내려는 의지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시인의 죽음을 통해 ‘리푸레이’가 서정성을 자신의 내면으로 더 깊이 받아들이게 되고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왕’ 앞에서 두려움 없이 목소리 높여 삶과 서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겹쳐진다.
“결말의 존재를 두려워하거나 위축되지 않고, 어떤 가능성도 회피하지 않은 채 엉망이 될 ‘그 이후’의 국면을 통찰하면, 그 이후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조금도 약화되지 않을 겁니다. 통찰이든 시도든 성실하게 대하고, 절대 관중을 가공해 멋대로 공연하지 않을 것이며, 요행심리로 게으름을 피우거나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을 거고요. 이렇게 세상을 대하고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 서정 아닐까요?... 그런 행동, 그런 인생이 바로 서정시가 아닐까요?”
2018년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이 책을 덮으며 2019년의 다가올 새날에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싶은지 다시 질문은 이렇게 이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