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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섭맘님의 서재

어이구, 저런 사람이 있나 싶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명을 받았을 거야. 그때 같이 재판받은 사람들이 진짜 ‘일당‘이 되어버렸잖아요. 87년 비판적 지지, 평화민주당, 국민의 정부까지. ‘역사의시루떡‘이라고 할까. 사건과 인연이 켜켜이 누적되면서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1981년 안동 교도소에서 아내 김정옥에게 보낸 옥중 편지

나는 아주 오래전에 사회학적 상상력을 번역하면서 개인의 삶과 사회구조그리고 역사의 흐름, 이 셋으로 기본적인 틀을 짜놓은 밀즈의 사회관에 깊이 끌려들었던 적이있었소. 지금 내가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셋 사이의 의미 부여가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를 것 같아요. 어떤 이는 개인의 삶에 어떤 이는 사회구조의 편성에 또 어떤 사람은 역사의 흐름에 큰의미를 부여한 것 같아요. 이런 틀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곤 해요. 그리고 그 삶에서 겪는 고난과 아픔을 되새기곤 해요.
일본에서 DJ 납치를 맡았던 우리 정무공사가 미국 대사관에 연락을 했대요. 우리가 지금 DJ를 납치해간다고. 미국 대사가 이 사실을 미 국무부에 보고했고 국무부가 깜짝 놀라서 절대 안 된다.
무조건 막으라고 한 거야. 미국이 헬기까지 띄워서 죽음 직전의 DJ를 찾아냈으니 하늘이 도왔다고 할 만하지. 그런 일을 겪은 분이니까 하느님을 믿고 사형선고를 받은 뒤에도 의연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여담인데 DJ 납치를 맡았던 정무공사는 그 일이 있고 나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어요. 그 아들이 주한 미국 대사를 했던 성 김이야, 대사로 올 때 동교동 사람들하고 상의를 했지. 노코멘트로 가자, 그렇게 얘기가 됐어요. 성 김아버지가 DJ 납치를 맡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사람 덕분에 DJ가 살았으니까.
치미치
민청련 민주화운동청년연합 85.9 즈음 민통련에 통합
민통련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민주, 민중, 통일

민주화운동과 민족 통일은 하나다, 동전의 양면이다. 그게 문목사님의 명제였어. 민주화가 되어야 민족 통일이 가능하고, 민족통일이 되어야 민주화가 완성된다. 그 말씀을 자주 하셨지.
앞에서 잠깐 얘기했지만 장준하 선생도 그렇게 말씀하셨거든.
민주화가 안 되면 분단 세력이 판친다고. 아마도 훗날의 전두환 세력 같은 경우를 말씀하신 거겠지. 그분들은 통일의 중요성을 체득하신 거고 그래서 더 간절하셨던 거지. 분단 이후에 살아온 사람들하고는 감이나 깊이가 달랐다고 할까.
문 목사님은 늘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나는 윤동주한테 빚진사람이다. 장준하한테 빚진 사람이다. 문 목사님과 윤동주 시인이북간도 명동촌에서 함께 자란 친구라는걸 나중에알았어요. 윤동
그러다가 86년 초부터 야당에서 대통령직선제 개헌 서명운동에 들어가잖아요. 신민당이 각 지역에서 헌법개정추진위원회 현판식 행사를 열면 민통련은 밖에서 기습 시위를 하는 방식으로 간접결합을 했어요. 그런데 5월 3일 인천에서 서노련 쪽 그룹들이 격렬하게 시위를 벌이면서 민통련, 서노련이 배후 세력으로 몰리고 세게 탄압을 받은 거지. 그때 김문수가 제일 고문을 많이 당했어요.
노선이 달랐다고 해도 서노련 사람들이 끌려가서 고문당하면 거기에 대항하는 것도 민통련의 일이었으니까 같이 싸웠지.

깊이 관여한 인물의 배신이 더 격렬하고 악랄한 것.
그 모든 기억을 다 품고 정신 승리하려면 그랬어야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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