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배운 자들이구사하는 지배적 언어는 헛되고 또 헛되었지만 말쑥한 논리를갖추어서 세상의 질서를 이루고 있었다.
-그럴 테지. 신부님은 프랑스 사람이다. 프랑스는 힘센 나라다. 신앙에는 국경이 없다고 신부님은 말했지만 사람의 땅 위에는 국경이 있다.
뮈텔은 신앙과 문명을 군함에 실어서 세계에 전하는 조국랑스와 프랑스 왕과 프랑스 군대와 프랑스 교회를 위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안중근이 사형선고를 받은 후에도 뮈텔의 날들은 경건했다.
안명근은 빌렘과 뮈텔이 자신을 일본헌병대에 제보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또 빌렘과뮈텔도 이 같은 사실을 안명근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빌렘과 뮈텔은 안명근이 이 제보의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와 관련된 성직자들의 내면은 매우 복잡하거나, 또는매우 단순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빌렘과 뮈텔만이 아는 일이고, 후인이 말하기 어렵다.
뮈텔은 조선에서 대목구장으로 사목하는 사십여 년 동안 매일같이 일기를 써서 남겼다. 『뮈텔주교 일기』는 한국 천주교회사와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된다. 뮈텔은 1933년여든 살의 나이로 사망해서 서울 용산 성직자 묘지에 묻혔다.
2000년 12월 3일 한국 천주교회는 대희년을 맞아서 쇄신과화해‘라는 제목의 문건을 발표하고 한국 교회가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이름으로 발표된 이 문건은 한국 교회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안중근현양 사업을 선도적으로 전개해왔다.
1945년 광복 직후에 김구는 여순감옥 공동묘지에 묻힌 안중근의 유해를 발굴해서 봉환하려는 노력을 시작했고, 그후로 정부와 민간의 유해발굴 노력은 계속되어왔다. 2006년 남북한이합동으로 발굴단을 구성해 조사를 실시했으나 성과가 없었고,
그후로 유해의 행방에 관한 유의미한 정보는 없다.
필요한 몇 가지를 말하겠다. 내가 이토를 죽인 까닭은 이토를 죽인 이유를 발표하기 위해서다. 오늘 기회를 얻었으므로 말하겠다. 나는 한국 독립전쟁의 의병 참모중장 자격으로 하얼빈에서 이토를 죽였다. 그러므로 이 법정에 끌려 나온 것은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객으로서 신문을 받을 이유가 없다. 이토가 한국 통감이 된 이래 무력으로 한국 황제를 협박하여 을사년 5개 조약, 정미년 7개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것을알기 때문에 한국에서 의병이 일어나서 싸우고 있고 일본 군대가 진압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일본과 한국의 전쟁이라 하지않을 수 없다…….
논고와 변론은 이틀에 걸쳐서 길게 이어졌다. 안중근은 피고인석에 앉아서 잠자고 들었다. 검찰관은 안중근의 범죄가 무지와 오해의 소치이며 이것이 살의의 바탕이라고 말했고, 변호인은 이 무지와 오해는 동정할 만한 것이고 감형의 사유가 된다는취지로 말했다. 검찰관의 논고와 변호인의 변론이 가지런하게잇닿아서 서로를 꾸며주고 있었다.
제가 이토를 죽인 일을 뉘우친다면, 제가 이토를 죽이는 사업에 성공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만일 이 사업에 실패해서이토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저는 이토를 죽이려는 저의 마음을 뉘우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신부님.
-그것은 세속의 마음이다. 뉘우침이 아니다.
-그것이 저의 진심입니다.
- 너의 마음의 깊은 곳에 또다른 마음이 있을 것이다. 말하기힘들어도 그것을 말해라.
안중근은 눈을 감고 혀로 마른 입술을 죽였다. 안중근이 말했다.
-이토를 쏠 때, 이토를 증오하는 마음으로 조준했습니다. 쓰러뜨리고 나서, 신부님께 세례 받던 날의 빛과 평화가 떠올랐습니다.
-그 평화가 너에게 다가오고 있다. 계속 말해라, 도마야. 너는 1907년에 조선을 떠나서 대륙으로 갔다. 그후에 네가 한 일을 다 말해라. 옥리들이 입회해 있으니 작은 소리로 말해라. 다말해라. 모두 다 말해라.
-사형수의 시체처리에 관해서는 소정의 규칙이 있을 것으로 알고 있으나, 만일 안중근의 시체를 유족에게 넘겨주면 그들의 무분별한 행위로 인해 안중근의 묘지를 성역화하려는 계획이실현되지 않으리라고 보증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장래를 위해 좋지 않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귀청에서 세심히 고려하시어대비하시기 바랍니다.
관동도독부는 안중근의 시체를 유족에게 내주지 말고 집행 후지체 없이 감옥 구내 묘지에 묻으라고 여순감옥에 공문으로 지시했다.
아마도 빌렘이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공개적으로 ‘한탄했을 수도 있겠다고 안중근은 생각했다. 교회가 영적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속한다 하더라도 교회는 이토가 만든 세상의 땅 위에세워진 것이고, 빌렘도 그 땅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므로 그 땅위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고 빌렘도 빌렘 자신의 모순에 부딪혀 있을 것이라고 안중근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가 죽이는 무수한 인간의 목숨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고,
하느님께서 그 영혼들을 당신의 나라로 인도하고 계시니, 빌렘이 교회를 짊어지고 이토의 땅 위를 걸어간다 하더라도 안중근에게는 하느님의 자식 된 자로서 빌렘과 더불어 할 이야기가 남아 있을 것이었다.
-그대가 말하는 동양평화란 어떤 의미인가?
- 동양의 모든 나라가 자주독립하는 것이다.
-그중 한 나라만이라도 자주독립하지 못하면 동양 평화가아니란 말인가?
-그렇다.
안중근이 무슨 생각으로 처자식들을 하얼빈으로 불렀는지 정대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대호는 안중근의 처자식을 데리러 평양에 갔다가 며칠을 주색잡기로 소일하고 10월 23일에야평양을 떠났는데, 안중근이 총을 쏘기 전에 처자식들을 데려와서 만나게 해주었다면 안중근이 총을 쏠 수 있었을까를 정대호는 생각했다. 안중근을 위해서나 그의 처자식을 위해서나, 총을쏜 후에 그의 처자식들이 하얼빈에 도착해서 안중근이 총을 쏘기 전에 처자식과 만날 수 없었던 것은 잘된 일이지 싶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은 끝내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정대호는 마음이 편해졌다.
총으로 쏘아 죽이는 방식으로 증오를 표출한 천주교인의 죄악에 뮈텔은 상심했다. 백 년이 넘는 박해의 세월을 견디면서 죽음에 죽음을 잇대는 순교의 피 위에 세속의 거점을 겨우 확보한 조선 교회가 또다시 세속 권력과 충돌한다면 교회의 틀이 위태로워질 것을 뮈텔은 걱정했다. 뮈텔은 자신의 걱정을 신부와 신도들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안중근은 사제를 능멸했고 교회의 가르침을 배반했으며, 교회 밖으로 나가서 살인의 대죄를 저질렀으므로, 그가 비록 영세를 받았다 해도 더이상 교회의 자식이 아니라고 뮈텔은 하느님께 고했다. 하느님은 세속의 일에 관하여대답하지 않았다.
인력거에 몸이 흔들리면서, 뮈텔은 이토를 쏜 자는 한국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선교사로 사목해온 지난 이십여 년 동안 이 작은 반도에서 벌어진학살과 저항이 그런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뮈텔은 스스로 알았지만, 그것을 사타케에게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미개한 사회의 원주민들이 문명개화로 이끄는 선진의 노력을억압으로 느끼고 거기에 저항하는 사례들을 뮈텔은 세계의 후진지역에 파송된 동료 성직자들의 보고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불꺼진 집들의 어둠 속에서 한국인들이 목소리를 낮추어서 이토의죽음을 기뻐하고 있는 모습을 뮈텔은 상상했다.
이토를 죽인 범인은 한국인 청년 안중근이고, 안중근은 집이년 전에 황해도 산골 마을에서 빌렘 신부에게 영세 받은 천주교인이라는 사실은 며칠 안에 세상에 알려졌다. 한국 황실은 불령한 신민 한 명이 잘못 태어나서 저지른 죄업을 일본 황실에 거듭사죄했다. 뮈텔은 이 황급한 사죄에서 사건의 배후로 의심받지않으려는 한국 황실의 두려움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