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와 미래는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지만, 오늘을 대하는 선택과 태도는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불확실한 미래를 미리 염려하며 오늘의 마음을 흔들곤 한다. 하지만 삶은 늘 오늘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 내일로 향하는 법이다. 완벽한 내일을 준비하느라 오늘을 망치기보다는,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살아내는 일이 가장 위대한 용기일지도 모른다. 김선영 작가의 장편소설 『내일은 내일에게』 개정판은 이처럼 숨이 막힐 듯 버거운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오늘을 버텨내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단단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성장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열일곱 살 소녀 연두의 삶은 청소년 문학이 흔히 다루는 풋풋하고 싱그러운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재개발조차 비켜간 저지대 동네의 오래된 집에서 연두는 가난과 상실, 외로움과 불안을 온몸으로 감당하며 살아간다. 친엄마와 아버지를 모두 여의고 새엄마, 그리고 아버지는 같고 엄마는 다른 이복동생 보라와 함께 살아가는 연두에게 세상은 자꾸만 소중한 것들을 앗아가기만 하는 냉혹한 공간이다. 기댈 수 있는 어른도 없고 안정된 울타리도 없기에 연두는 자신의 미래를 감히 선명하게 그리지 못한다. 그저 하루하루 무너지지 않기 위해 오늘을 버텨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연두의 집 앞에 새로 문을 연 '카페 이상'은 연두의 메마른 일상에 작은 균열을 일으킨다. 우연한 기회로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연두는 저마다의 상처와 결핍을 지닌 사람들과 마주한다. 말 못 할 깊은 상처를 품고 왼 손목에 붉은 선을 숨긴 동급생 유겸, 먼 타국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아 한국으로 온 마농,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자신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당당하게 바라보는 이규, 그리고 연두의 내일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카페 주인아저씨까지. 연두는 이들과 관계를 맺으며 혼자서 고독하게 버티는 법이 아니라, 서로의 결핍을 보듬고 조용히 곁을 내어주는 연대의 온기를 처음으로 배우게 된다.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결핍에 직면한 아이들의 현실을 다루면서 결코 설익은 위로나 어설픈 다독거림으로 이야기를 쉽게 덮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설 속 현실은 차갑고 잔인하며, 깔끔하게 매듭지어지는 해피엔딩도 없다. 신이 당장 다음 고난의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 같은 가혹한 상황 속에서도 작가는 냉정함을 유지한다. 어차피 감당해야 할 제 몫의 삶이라면 비겁함 없이 그대로 직시하고 겪어내야 한다는 뚝심이 문장마다 박혀 있다. 거창한 구원이나 극적인 반전은 없지만, 불안 속에서도 다시 밥을 먹고 학교에 가며 타인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시간을 묵묵히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깊은 감동을 준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두려움은 갖지 않기로 하자."라는 연두의 다짐처럼, 책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오늘을 놓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내 미래를 기대하고 기다려주는 단 한 사람의 존재가 있다면 세찬 비바람 속에서도 다시 걸어갈 힘을 얻는다. 완벽하지 않은 채로도 삶은 계속되며, 오늘을 살아낸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훌륭하다. 숨이 막히고 삶이 버거운 순간, 주문처럼 외치는 "내일은 내일에게"라는 말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의 무게를 내일의 나에게 기꺼이 맡겨두는 지혜를 일깨워준다. 불안한 터널을 지나고 있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매일 주저앉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가슴 먹먹한 울림과 단단한 용기를 전하는 작품이다.
※ 이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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