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 복잡함을 오래 견디지 못한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사람은 오히려 더 단순한 결론을 원하고, 그때 가장 먼저 작동하는 것이 ‘직관’이다. 키코 야네라스의 『직관과 객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믿는 판단의 상당수가 사실은 경험과 느낌이 만들어낸 빠른 결론일 뿐이며, 그것이 얼마나 자주 현실을 왜곡하는지를 데이터와 사례를 통해 차분하게 보여준다.
책에서 말하는 직관은 감정적이거나 비합리적인 판단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에게 꼭 필요한 사고 방식이다. 우리는 복잡한 상황에서 빠르게 방향을 잡아야 할 때가 많고, 그때 직관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문제는 직관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불확실성을 견디기 어려운 인간의 뇌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그것을 경험이나 감각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직관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직관이 만든 가설을 그대로 믿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숫자와 통계, 즉 객관의 영역이다. 그러나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숫자를 절대적 진실로 격상시키지 않는다는 데 있다. 통계는 현실을 설명하는 강력한 언어이지만, 현실 자체는 아니다. 표본의 크기, 데이터의 수집 방식, 해석의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예컨대 ‘아이스크림 판매가 늘면 범죄가 증가한다’는 통계가 있다고 해서 아이스크림이 범죄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더위라는 제3의 변수가 두 현상을 동시에 만들어냈을 가능성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이처럼 숫자는 진실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하나의 렌즈이며, 우리는 그 렌즈의 왜곡 가능성까지 함께 읽어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직관과 객관의 관계는 결국 경쟁이 아니라 협력에 가깝다. 직관은 질문을 만든다. “뭔가 이상하다”, “이 흐름이 맞는 걸까” 같은 감각이 출발점이 된다. 그리고 통계와 데이터는 그 직관을 검증한다. 반대로 숫자만 보고 판단하면 맥락과 인간적 요소를 놓치기 쉽다. 데이터상으로는 생산성이 올라갔는데 현장의 만족도는 떨어지는 상황처럼, 숫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실이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객관은 단순히 숫자를 보는 능력이 아니라 숫자를 의심하고 해석하는 태도까지 포함한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메시지는 의외로 따뜻해진다. 데이터 리터러시(정보를 비판적으로 이해, 평가, 활용, 생산하는 종합적인 소양)는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을 향한 이해와 균형 감각이 없다면 어떤 통계도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숫자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연결하는 것이 진짜 객관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부분에서 이 책은 단순한 통계 교양서를 넘어 현대 사회의 사고 방식을 돌아보게 하는 인문서로 확장된다.
읽고 나면 한 가지 분명해진다. 정보가 많다고 해서 판단이 더 정확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직관의 유혹은 더 강해지고, 숫자의 권위에 기대고 싶은 마음도 커진다. 『직관과 객관』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방법을 알려준다. 직관을 완전히 버리지도, 숫자를 맹신하지도 말 것. 대신 둘을 오가며 질문하고 검증하는 습관을 들일 것. 결국 이 책이 말하는 것은 통계 기술이 아니라 사고의 태도에 가깝다.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다.
직관은 방향을 제시하고, 통계는 검증을 돕고, 객관은 그 둘의 균형 속에서 만들어진다. 정보 과잉 시대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결국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오래 남는다.
※ 이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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