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트 램프(Heart Lamp)’라는 제목은 이 책의 성격을 정확하게 드러낸다. 램프는 태양처럼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거대한 빛이 아니다. 다만 어둠 속에서 최소한의 빛으로, 한 사람의 방과 얼굴을 겨우 비출 뿐이다. 『하트 램프』가 비추는 것도 바로 그런 빛이다. 역사가 지워버리고 제도가 외면했던, 기록되지 못한 마음의 심연 속에서 조용히 살아온 여성들의 심장이다.
검은 바탕 위에 보랏빛 점들이 흩뿌려진 표지 또한 이 책의 태도를 상징한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삶이 ‘점’처럼 지워지는 순간들을 집요하게 응시하지만, 그 빛은 결코 요란하지 않다. 생활의 언어, 사람들끼리 툭툭 던지는 말, 체념과 농담이 섞인 숨결을 통해 조용히, 그러나 끝까지 따라오는 방식으로 우리 마음 안쪽을 비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마음이 오래 어두웠다. 그러나 그 어둠은 불쾌하다기보다는 눈을 감아버릴 수 없게 만드는 종류였다. 『하트 램프』는 누군가의 삶을 설명하거나 정리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독자를 그 고통스러운 삶의 곁에 가만히 세워 둔다. 그래서 더 아프고, 더 오래 남는다.
2025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은 분명 화려하다. 단편집 최초 수상이라는 점, 인도 지방 언어인 칸나다어로 쓰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문학적 성취는 독보적이다. 그러나 이 책의 진짜 무게는 상보다 훨씬 아래, 사람들의 낮은 하루하루에 가라앉아 있다. 바누 무슈타크는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 지역의 무슬림 여성들을 30년 넘게 바라봐 온 작가이자 활동가이며 변호사다. 그 핍진한 시간이 문장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특별하지 않다. 그래서 더 비극적이다. 남편의 말 세 번으로 이혼이 결정되고, 아들을 낳지 못하면 상속에서 배제되며, 부르카 없이는 외출조차 쉽지 않은 삶이 이어진다. 아직도 이런 일이 존재한다는 사실보다, 그것이 ‘일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더욱 잔인하게 느껴진다. 특히 신 앞의 평등을 외치는 종교 의례조차 계급에 따라 ‘금박 룽기’와 ‘잿가루’로 나뉘는 현실(<붉은 룽기>)이나, 여성의 몸과 정신이 가문과 체면 사이에서 소모되는 과정(<하이힐>)은 이 사회의 불평등이 얼마나 구조적으로 고착되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물질은 귀해지고 인간은 무가치해졌다”는 작가의 탄식은 과장이 아니라 정확한 진술처럼 들린다.
그 정점에 놓인 문장이 바로 “모든 꽃이 신부를 장식하는 행운을 얻는 것은 아니다. 어떤 꽃은 무덤을 위해서만 꽃을 핀다”이다. 이 문장은 『하트 램프』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서늘하면서도 아름다운 비유다. 꽃은 본래 아름답지만, 쓰이는 자리에 따라 전혀 다른 운명을 부여받는다. 신부의 꽃이 축복과 환희, 선택받은 삶을 상징한다면, 무덤의 꽃은 태어날 때부터 기쁨보다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삶을 은유한다. 그러나 무덤에 놓인 꽃이라고 해서 그 꽃이 피어온 시간과 향기가 덜한 것은 아니다. 작가는 주류의 삶에 속하지 못하고 평생을 인내와 희생 속에서 살아온 여성들의 삶 또한 그 자체로 충분히 고귀하게 피어난 ‘꽃’임을 말하고 있다. 세상이 그들을 슬픔의 자리로만 밀어 넣으려 할지라도, 그들이 살아낸 궤적은 결코 하찮지 않다는 선언이다. 동시에 이 비유는 여성들에게 강요되어 온 ‘헌신’과 ‘희생’의 숙명을 조용히 폭로하며, 자기 자신을 위해 피는 대신 타인의 슬픔을 장식하기 위해 존재하도록 요구받아 온 구조를 시적으로 드러낸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신을 향한 질문이다. “오 주여, 한 번 여자가 되어 보세요.” 세상을 창조할 여유는 있으면서 왜 한 여자의 두려움과 소망을 들여다볼 시간은 없었느냐고 묻는 이 질문은, 신을 향한 원망이자 세계를 향한 고발이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항변이 아니라, 이름 없이 살아온 존재들이 처음으로 세계를 향해 던지는 자기 존재의 발화에 가깝다.
『하트 램프』는 멀고 낯선 인도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지금 여기의 이야기다. 형태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과 침묵, 그리고 그 안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간의 존엄에 관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문학이 서로의 삶 속에 잠시 살아보게 해주는 마지막 신성한 공간이라면, 이 책은 어둡지만 분명한 빛을 가진 램프 같은 작품이다. 쉽게 잊히지 않고, 함부로 덮을 수 없는 책이다.
※ 이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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