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듦, 그래서 더 아름다운 여행에 대하여
『칠십 여행』은 여행 에세이의 옷을 입고 있지만, 실은 인생의 후반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조용히 묻는 책이었다. 33년간 직장인으로, 아내로, 어머니로, 며느리로 역할을 다해온 한 여성이 은퇴 이후 길 위에 서며 써 내려간 기록은 ‘어디를 갔는가’보다 **‘그곳에서 내가 무엇으로 살아왔는가’**를 더 오래 남긴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시선이 돌아온다. 나도 요즘은 ‘여행’이든 ‘일’이든 결국 내가 누구로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젊은 시절의 여행이 풍경을 ‘채우는 일’이었다면, 칠십의 여행은 삶을 ‘비워내는 일’에 가깝다. 더 많이 보고 더 멀리 가는 대신, 천천히 머물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개발사업을 하다 보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변수들이 늘 도사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더 멀리 달리는 것보다 불필요한 걸 덜어내고 핵심을 붙잡는 일이 더 중요해질 때가 있다. 이 책이 말하는 ‘비움’은 단순히 내려놓음이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세우는 감각에 가깝다.
책은 ‘풍경–사람–사물–공간’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결국 모든 이야기는 인생으로 돌아온다. 노을을 보며 젊은 날을 떠올리고, 오래된 유적 앞에서 문명보다 사람의 삶을 먼저 바라보며, 부엌과 온천 같은 공간에서 여성의 자리와 자유를 성찰한다. 그 과정이 낯선 풍경을 소비하는 여행기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내면을 천천히 되짚는 여정처럼 느껴진다. “여행을 쓰려 했는데 결국 나를 쓰고 있었다”는 고백은, 사실 이 책을 읽는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남의 여행을 읽고 있는데, 자꾸 내 삶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이 책이 나이 듦을 상실이나 쇠퇴의 언어로만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이 듦은 포기나 체념이 아니라, 역할에서 벗어나 비로소 ‘존재’로 돌아오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젊을 때는 상처를 먼저 보지만 나이가 들면 빛을 먼저 보게 된다는 문장을 읽으며, 나는 최근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예전에는 ‘부족한 것, 잘못된 것, 위험한 것’이 먼저 보였다면, 요즘은 그 와중에도 지켜야 할 것(가족, 건강, 하루의 평온)이 더 또렷해지는 순간이 있다. 세상이 바뀐 게 아니라, 내 눈이 조금 달라진 걸지도 모르겠다.
절제된 문체와 느린 호흡, 그리고 사진들은 독서의 속도를 자연스럽게 늦춘다. 쉽게 읽히지 않는 이유는 난해해서가 아니라, 생각 없이 넘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질문 하나가 남는다.
“지금의 나는, 과연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이 불편하기보다, 오히려 마음을 정돈해준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달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 바쁨 속에서 정작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칠십 여행』은 특정 연령대를 위한 책이라기보다, 언젠가 맞이할 시간을 미리 걸어보게 하는 책이다. 나이 듦을 두려움이 아닌 가능성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에게, 그리고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내 삶의 결을 다시 고르고 싶은 사람에게 조용히 건네는 인생의 여행기다.
※ 이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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