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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의 재생산, 이에 함께하는 <일본군 성노예제>
-‘정진성, <일본군 성노예제>,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을 읽고 나서-
대학교 1학년, 그러니까 대략 1년 반 전 나는 말하기 교양 수업에서 ‘일본군 성노예제’를 주제로 스피치를 한 경험이 있다. 그때 한 학우는 질문했다. “일본은 왜 사과하지 않는 것인가요?” 당시의 나는 뻘뻘거리며 길지 않게 대답했다. 사실 지금도 조리 있게 답할 자신은 없다. 다양하게 얽힌 사회적·역사적 맥락이 존재하며, 많은 현실적·이념적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에 여전히 얕은 지식으로는 쉽게 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은 증인이 모두 사라지고 자신들이 사과할 필요가 없는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사과를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 인권운동가 김복동이 수요시위에 나와서, TV에 나와서, 영화 스크린에 나와서 ‘일본은 사죄하라!’라고 외치는 것이 일본 정부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냐고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른다. 여성 인권운동가 길원옥이 아리랑을 부르고, 일본 정부의 뻔뻔한 태도에 화를 내는 것이 일본 정부의 변화를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냐며 누군가는 자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증인과 사료를 두려워한다. 많지 않은 사료(일본 정부는 당시의 기록을 최대한 없애고자 하였고, 이후에도 기밀 문서로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가 증명하는 사실과 피해자를 비롯한 다양한 증인이 언급하는 경험은 문제의 심각성을 전 세계에 알리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는 90년대 많은 자료가 세상에 드러난 이후, 한국과 일본에서 일본군 ‘위안부’ 운동이 활발해졌던 것뿐만 아니라 UN, ILO 등 권위 있는 국제기구가 일본에 문제 해결을 권고하고 미국 등에서 관련 법안이 상정된 것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기존 사료와 증언을 정리하고 보존하여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실을 계속해서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는 ‘증인’을 재생산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이 책은 이러한 맥락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군 성노예제>는 앞서 말한 두 가지를 모두 담고 있다. 정진성 교수가 직접 설문 조사를 하거나 면담 인터뷰했던 내용을 통해 피해자들이 경험했던 것들을 통계화하거나 면밀히 분석한 내용도 담겨 있으며, 90년대부터 발견되었던 일본, 미국 등의 당시 공식 문서 등 사료 역시 자세히 서술되어있다. 이 책을 통해 역사적 진실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독자 역시 또 한 명의 ‘증인’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또한, 이는 역사 부정론자들이 활발히 활동하여 진실 자체를 흔들고 있는 현재 상황에 더욱 의미가 깊다. 누군가는 이 사실을 실증하고 증명하는 것은 이미 90년대에 완료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이 문제가 처음 대두되었을 때 많은 자료와 증언들이 속속히 밝혀졌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법적 조치 및 운동이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역사 부정론자들로 인해 강제동원이 실제로 있었는지, 조선인 여성들이 많은 피해를 받았던 것이 사실인지 자체가 헷갈리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명확한 진실을 마주하며, 새로운 ‘증인’으로 등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의견에 무조건적으로 반감의 감정을 가지기보다는, 그들 의견의 논리를 파악하고 어떤 지점이 왜곡되고 있는지를 명확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책에서는 지금까지 일본 정부와 일본 시민 사회가 어떤 대응을 해왔는지에 대해서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이 역시도 그들의 논리를 파악하고 향후 방향을 예측하는 데 있어 유의미한 자료일 것이다. 80년대 후반, 그리고 90년대 초반 이 문제가 서서히 시민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할 때에도 일본 정부는 이 문제를 부인했다. 그러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 이후 조금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증인의 힘이었다. 그리고 93년 사과하는 태도를 취했다. 일본 정부 공식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이에 대해 사과하였지만, 강제성과 직접성에 대해서 완전한 인정을 하지 않은 등 한계가 존재하는 사과였다. 그리고 1995년 국민기금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는 민간 차원의 기부금으로 주로 이루어졌고, 일관된 사죄가 부재하였다. 국민기금은 일본의 시민 운동단체들뿐만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역시 분열시키기 적절했다. 또한, 이 문제를 제기하는 한국에게도 자신들의 노력을 말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었다. 그 이후 일본은 지속적으로 문제를 부인하고 있으며, 아베 정권이 들어선 이후 우익과 혐오 세력이 강화되었다. 특히 2015 한일 합의가 이루어져 문제 제기를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하였고, ‘정의기억연대’의 우간다 김복동센터 건립을 방해하는 등의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나아가, 이 책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운동의 교차성을 분석한 것 역시 인상적이었다. 성, 전쟁, 민족, 식민지 등 다양한 축이 연관되어 있음을 말하고, 그 축에서도 특히 일본군 ‘위안부’ 운동이 다소 문제 제기에 미약했던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책 전체에서 저자는 지속적으로 일본군 ‘위안부’는 특수적인 경우로, 식민지의 대량 강제동원, 전쟁 후 방치 등 조직적, 체계적인 엄청난 규모의 범죄라고 말한다. 현재 일부 사람들이 일본군 ‘위안부’ 운동이 ‘민족주의적’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게, 이 문제가 식민지적 특성과 민족적 차별에 대한 부분이 다소 경시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운동의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과 국제법 및 세계 강대국의 영향력과 같은 현실적인 이유가 주된 이유가 되는데, 이는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한계가 있다고 한다. 또한, 조선이 식민지국이었기에 토지조사사업 등으로 인해 국민의 대부분이 소작농 등을 하는 빈곤 계층으로 전락하였고, 경제적 이유로 여성의 이농도 잦았다. 이러한 식민지적 맥락 역시 파악해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더욱 넓게 이해할 수 있으며, 일본의 책임 소재를 더욱 명확히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자세히 알아야 하며, 사료와 증언을 통해 팩트를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진보적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태도도 견지해야 한다. 정진성 교수가 일본의 일부 운동가에게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물어봤을 때, “더 나은 일본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혹은 “더 윤리적인 일본 사회를 위하여”라는 답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의 운동 목적은 ‘한국 사회의 발전’이 일차적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일차적으로는, 피해자들의 치유를 위하여, 또한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 문제가 재발되지 않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현재 공식적 피해자로 생존해계신 분은 19명이다. 직접 경험한 피해자 증인이 19명인 것이다. 그러나, 증인은 그 이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증인의 영향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전 세계에 뻗쳐나갈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운동이 그것을 증명해왔다. 이 서평을 읽고 있는, 또한 이 운동을 하고 있는 나와 당신 역시 모두 새로운 ‘증인’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또한 다양한 사료를 통해 재생산되는 증인은 천 명, 만 명 그 이상일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생산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증인의 힘을 믿으며 문제 해결을 위한 한 발자국을 같이 내딛어보자는 마음에서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