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한권의 책을 읽는 시간은 전체적인 느낌 또는 찰나의 감정의 여운을 느낄 사이도 없이 아주 빠르게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런 내가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천천히 조금씩 음미하며 읽기 시작했다. 꼼꼼하게 메모해 가며 읽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자신이 집필한 그 어떤 책이든 어떤 주제, 어떤 의미를 남겨야 한다는 강한 의식을 가지고 써 내려가지 않았다고 하며 나의 행위를 제지할 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란 질문 따윈 없다고. 그런데 말이다. 작가는 실패한 여행도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지만 나에겐 그런 능력이 없으니 작가의 시선에 따라 그 자취를 따라가며 작가가 남긴 감정의 여운을 느껴 보고 싶다고 한다면 그 때도 나를 제지할까?
작가는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고 했는데 걱정거리가 있으면 여행을 오롯이 즐겁게 느낄 수 없는 나는 현재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아닐까. 여행지에 가서도 나는 여전히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걱정한다. 그래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사라지지 않는 문제들이 늘 나를 압박한다.
우리가 지구라는 별에 태어나 타인의 환대속에 살아가는 것과 현지인의 도움을 꼭 필요로 하는 여행, 이 둘은 닮아있다고 했다. 작가가 언급한 이 글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선사했다.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죽을 때까지 고민하며 살아가는데 우리는 지구라는 별에 여행을 왔다고 하니 꽤 만족스럽진 않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여행의 이유]는 이렇듯 철학책이 아닌데도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작가는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또한 우리의 인생과 맞닿아 있음을 말하고 있으며 그는 23살의 중국 여행이 지금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연결해 나가며 '추구의 플롯'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작가는 왜 [여행의 이유]를 썼을까. 과거 이동이 잦아 친구가 없고 호텔 예약 후 호텔에 도착했을 때 자신의 이름이 있고 그 곳에서 받아들여졌다는 안도감, 글을 쓰는 이유 또한 자신이 만든 낯선 새로운 세상에서 받아들여졌다는 안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누구도 질문하지 않는 내밀한 이야기들과 '자신이 왜 그랬을까?'에 대해 자주 자문해 보던 질문의 답을 찾았기에 너무나 이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 누가 묻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답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가벼운 여행담은 아니었다. 작가의 살아온 이야기였고 그를 스쳐가는 시절의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이 책을 쓰는데 모든 여행의 경험이 필요했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짧게 언급되는 이전의 작품들의 에피소드들, 현재의 이야기들이 아닌 과거의 시점에서 일어난 일들을 들려주며 [여행의 이유]는 유명한 곳을 찍은 수많은 사진들과 여행지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나가는 여행기와 다름을 명백히 드러낸다.
"인생과 여행", 이 둘이 맞닿아 가는 길의 끝에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에 품었던 꿈과 성공적인 삶을 위한 목표였던 많은 것들이 점점 그 꿈의 여정에서 멀어져 가지만 결코 실패한 길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에 있으며 그 누구라도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비하고 길을 떠나지 않으며 많은 불안요소를 안고 나아가고 또한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일상 생활에서조차 '나'를 드러내지 못하고 아무 것도 아닌 '나'라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나는 일상에서도 여행지에서도 아직 '나'를 찾지 못했다. 나의 여행은 시작되지 않았고 아직은 일상 속에 머물며 숨 고르기를 한다. 팍팍한 현실 안에서 조금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나'는 늘 여행을 꿈꾼다. 제대로 된 '나'를 만나기 위해. '나'는 나의 이야기들을 언제쯤 들려줄 수 있을까. 어쩌면 첫 문장을 쓸 기회조차 없이 끝나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을 살아가고 살아내고 있다. 지구라는 별에서 겪은 여행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줄 그 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살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