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김다경님의 서재
  • 남한산성
  • 김훈
  • 11,700원 (10%650)
  • 2007-04-14
  • : 25,034

    처음 남한산성을 읽어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았을 때 설레는 느낌이 있었다. 이해하기 힘든 난해한 철학책이나 고전소설이 아닌 베스트셀러 소설이었기 때문에 마음도 편했다. 그렇게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생소한 한자 어휘가 많고 문체와 표현이 창의적이면서도 추상적이어서 읽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김훈 작가의 특유 문체가 책 속의 상황을 상상하며 묘사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고 감성적인 부분이 많아 읽으면서 표현 하나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김훈의 문체는 독자로 하여금 몰입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는 듯하다. 배경묘사가 길면 지루하기 쉬운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배경묘사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고, 작가의 단어 선택 또는 상황이 글의 내용과 관련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소설의 전개 상 분위기와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

   책 ‘남한산성’은 우리 민족의 아픈 과거를 생생하게 재현해 낸 소설이다. 작가가 분명히 조선시대에 발발한 병자호란의 시대에 가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실존하지 않는 인물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가 허구적인 설정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고 그들이 실제로 그런 생각과 대화를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실 역사공부를 깊이 있게 하지 않아 역사를 잘 모르는데, 이 책의 배경인 병자호란에 대해 더욱 많이 알고 싶어져 병자호란과 인조, 최명길, 김상헌에 대해 알아보기도 했다. 표면상으로만 본다면 주화론

을 제창하는 최명길이 역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 역사상으로도 그렇고, 이 소설에서 최명길이 하는 생각들을 엿보았을 때도 그렇고 최명길은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하는 충신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소설 속에서는 최명길이 김상헌과 비교되며 김상헌이 좀 더 임금보다는 신하들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아낌없이, 적극적으로 주장을 하는 김상헌과 최명길과는 달리, 인조는 임금으로서의 절대적인 모습보다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약한 면모가 부각된 것 같아 의아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남한산성을 읽으며 든 의문중 하나는 나루와 정명수의 역할이었다. 나루와 정명수는 사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도, 유명한 인물과 관계가 깊은 인물도 아니지만 소설의 앞부분에서 나름 비중을 차지하는 듯 했다. 따라서 난 나루의 경우 나루가 차후에 항복을 할 즈음 주요 인물들에게 영향을 줄 인물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맨 마지막 부분에 서날쇠가 나루의 지아비를 고민하는 장면이 잠깐 나올 뿐 별다른 역할이 없었다. 그렇다면 왜 작가는 나루를 등장시킨 것일까? 어쩌면 김상헌이 나루의 아버지인 사공을 죽이고 얻게 되는 죄책감을 보여주며 김상헌의 인간적 면모를 비추려고 했을 수도 있고, 나루가 홀몸으로 남한산성으로 들어오게 되는 장면에서 산성 내에서 임금과 신하들이 희망을 얻게 해주는 역할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별 역할 없이 나루의 이야기는 열린 결말로 일단락되었다. 또한 정명수의 경우 앞부분에서 정명수가 노비에서 통역사로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하다고 볼 수 있는 삶이 나온다. 그러나 그 또한 큰 비중 없이 그의 이야기는 끝나버리고 말았다.

   나의 사소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지만, 난 이 소설을 읽으며 답답하고 허무했지만 나쁘지 않은 인상을 받았다. 병자호란에 대해서만 쓴 책이 아니라 남한산성 안으로 피신한 인조와 관료, 군사, 백성들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3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에서 지루하지 않게 실감나는 상황 묘사와 인물들의 세밀한 심리묘사를 해내었기 때문이다. 적병에 둘러싸여 남한산성에 갇혀 추위에 떨 때 임금이 느끼는 죄책감과 임금이 칸에게 항복하며 예를 행할 때의 암울한 절망감은 간결하게 여운을 남기는 문체 속에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임금이었다면 백성들 앞에서 적에게 절하는 치욕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