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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완영님의 서재
  • 안도현 잡문
  • 안도현
  • 12,150원 (10%670)
  • 2015-09-10
  • : 1,226

 

안도현이 시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틔위터 등 SNS에 올린 짧은 글들을 모아 엮은 책, 잡문을 읽고.

 

내가 안도현을 읽는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첫번째는 안도현의 발견이다. 이 책에서 나는 안도현을 발견했다. 안도현이 발견한 것들 중에서 마음에 와 닿는 것들이 있었다. 이번 잡문에서도 마찬가지로 한 번에 이해되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문장들… 또 공감가는 생각을… 나는 발견한다.

 

이 발견속에서 글이란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해 본다. 비유와 은유를 통해 깊은 울림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런데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쉽게 읽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천해서 그런지 단문이 좋다. 그리고 은유든 비유든, 직유든 읽으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 좋다. 유식한 식자들의 글처럼 여러번 꼬아 읽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은 질색이다.  또 너무나 시적이어서 시인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어려운 표현들도 싫다. 그런 책은 몇 페이지 읽다 말고 혼자말을 하고 덮는다. '난 아직 이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 내공을 쌓지 못했어, 나중에 읽지 뭐' 하고 말이다.

 

안도현이 발견한 것들 중에 나에게 온 글들을 소개한다.

 

(…)

내가 은근히 좋아하는 초등학교 2학년 꼬마시인이 한 분 계신다. "나무는 여름이면 매미소리로 운다"는 시를 썼다고 한다. 나보다 백배천배 낫다.

 

절벽이 가로막아도 절망하지 않는 강물처럼, 바위가 눌러도 아파하지 않는 모래알 처럼, 장대비 몰아쳐도 젖지 않는 새소리처럼

 

꽃이 입이 없어서 말 못하는 줄 아나? 꽃이 향기로 말하지. 입이 있어도 말 못하는 건 뭐지? 그건 말 귀를 못 알아들었다는 뜻이지. 그런데 말을 들었는데도 입을 열지 않는 이유는 뭐지? 그건 들키고 싶지 않아서야. 숨기고 싶은 게 많다는 뜻이지.

 

교실에서 남자아이가 용감하게 악수를 청하기에 잡아주었더니 아이들이 줄줄이 손을 내민다. 손들은 억세지 않았고 두껍지 않았고 욕심이 없었고 헐렁했고 가벼워서 마치 허공을 한 번씩 잡는 것 같았다.

 

웅덩이가

날개를

편다.

기발함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이 동시의 제목을 맞춰보시라.

고여 있는 웅덩이가 어떻게 날개를 펼까?

유강희가 쓴 <차가 지나갔다>이다. 헐!

 

응석을 부리고 싶을 정도로 햇볕이 좋은 날이었다. 이 햇볕을 나 혼자만 이마에 받는 게 미안한 날이었다. 하루도 미안한 마음 없이는 넘어갈 수 없는 내 조국의 맑은 하늘이 서러웠다.

 

바다가 엎드린 채 밤을 뒤적이고 있다.

 

하늘이 낮게 내려와 저녁 때 술이나 한잔 할래? 하신다.

 

배추에 소금 뿌리는 소리를 내며 비가 온다.

 

내다버려야 할 책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건 내가 아직 책을 다 소화하지 못했다는 것. 책읽기의 완성은 그 책을 버리는 것.

 

찔레꽃잎에 빗방울이 세 번 닿으면 그해 풍년이 든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내가 왜 시인이 되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시는 역시 말의 기억을 건져내 낡아가는 말에 생생한 기운을 불어넣는 것이다. 거기에 삶이 꿈틀거리면 더 좋고.

 

풀벌레들 다르 긁고.

 

매미소리가 가득 들어찼던 나뭇가지에 빗소리가 호도도독 들어앉고 있다.

 

가을밤이 쌀쌀하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가을밤이 쌉쌀하다고 엉뚱하게 말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엉뚱한 생각과 말이 세상의 혁명에 기여한다.

 

제발 좀 쉬엄쉬엄 마셔야지. 내 몸이 내 머리를 쥐어 박으며 꾸짖는 아침이다.

 

당신은 이마로 걸어가라. 바람이 가장 먼저 와 만져주리라.

 

김성호 <나의 생명수업> 중에서…

"버섯의 벗이 되려면 버섯보다 많이 큰 내가 먼저 버섯의 높이로 땅에 엎드리면 된다는 것."

 

이정록 동시집 <저 많이 컸죠> 읽다가 한 대 맞았다.

<할머니는 내 편>이라는 동시다.

 

"왜 자꾸 틀리니?"

엄마가 꾸중하면,

 

"어미야, 걔도 틀니니?"

 

모든 오늘은 최후다.

 

중학교 때 선생님한테 제일 듣기 싫은 말은 "아버지 뭐하냐" 였다. 농사짓는 가난한 아버지를 둔 덕분이었다. 경남 지역 아이들이 이제 "니네집 얼마나 가난하냐?"는 질문에 대답해야 밥을 준다고 한다. 참 나쁜 사람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에 개입할 경우, 가장 아름다운 것을 연애라고 하고, 가장 더러운 것을 폭력이라고 한다.

 

햇볕이 차가워지는 11월에는 생의 안쪽을 생각하게 되어 좋다.

 

전북 고창 무장읍성을 다녀왔다. 성 안에 '송사지관'이라는 무장객사가 있다. 객사 앞 화강암 축대에 새긴 연꽃이 너무 아름다워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혹시 그 연꽃 보신다면 저하고 눈을 맞춘 거라고 생각하시기를.

 

나를 낮추어 상대방을 높이는 걸 겸양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신을 상대방보다 무조건 낮추는 걸 미덕이라 생각하고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면 그건 아첨이나 비굴이다. 그런 자가 있다. 그런 자를 가리켜 허우대는 멀쩡한데 똥파리보다 못한 놈이라 한다.

 

한심한 봄의 노트에 밑줄을 긋고 가는 개울물.

 

어제 과음한 덕분에 하루 종일 폐인처럼 지낸다. 책 한 줄 안 읽고, 씻지도 않고, 누웠다가 일어나서 창밖 힐끔거린다. 이것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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