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책읽고 글쓰는 곳
  • fin
  • 위수정
  • 13,500원 (10%750)
  • 2025-10-25
  • : 1,375

1. 


  분량은 짧은데 어려운 소설이다. '가볍게 읽기 좋겠지?' 이런 생각으로 책을 막상 읽다 보면 결코 유쾌하고 가볍지 않다. 문학 평론을 하는 분들이야 깊고 깊은 수심을 걱정하면서도 제대로 장비를 갖추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 잠수부처럼 소설에 대해서 최대한 넓고 깊게 볼 줄 알겠지만 나는 기본적인 수영도 못 하고 물 공포증도 있고…, 하여간 여러 면에서 난국인데 말이다. 


  2. 


  주인공은 연극 배우인 최기옥과 윤태인이 있고, 또 그들의 매니저인 윤주와 상호가 있다. 최기옥은 약물을 맞은 일로 논란이 있던 중년의 여배우이고 인기가 높아서 삶이 그야말로 윤택하다. 윤주는 그녀의 매니저인데 평범한 외모에 이렇다 할 특징이라고 할 만한 게 없는 여성이지만 한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 적어도 윤주는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겠으나.


  윤태인은 악역을 주로 자처하는 배우이고 그 또한 인기가 높아서 남 보기엔 부족함이 별로 없다. 그의 매니저인 상호는 그의 곁에서 묵묵히 일을 한다. 가끔 악역을 연기하고 있는 중인가 착각이 들 정도로 까칠하게 구는 태인의 행동을 잘 참아준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무엇이냐면 기옥은 윤주를 부러워 하고 윤주는 기옥을 부러워 하며, 태인은 그런 기색은 없지만 상호는 태인을 부러워 한다는 점이다. 


  도대체 이게 어떤 점에서 흥미로운가. 기옥은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관리 잘 받는 여성 특유의 광채가 나면서 속 썩게 하는 자식도 없다. 누가 봐도 부러운 삶 아닌가. 그런데도 항상 우울과 불안에 절어 지내고 예쁘지도 특별하지도 않지만 그저 젊다는 이유 만으로 윤주를 부러워 한다. 윤주는 당연히 그런 기옥이 이해가 안 가고 부족한 거 없이 지내는 기옥이 부러울 뿐이다. 


  상호도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태인이 부럽기 그지 없다. 더군다나 따뜻하고 안락한 집과 귀여운 아내도 있고 돈도 잘 벌고.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들은 상대에게 '너는 뭘 잘 모른다', 이런 소리만 한다. 기옥이 윤주에게 윤주가 기옥에게 그렇게 말하거나 느끼고, 태인과 상호도 그랬을 것이다. 서로가 그저 부럽기만 하지 왜 저렇게 불만이거나 우울한지 이해가 안 간다. 


  뭘 모른다는 걸까. 그게 궁금했다. 그 말에는 여러 뜻이 숨어 있겠다. 서로의 마음일 수도 있고, 나의 가면이 아닌 그 속에 감춰진 진실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삶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우리는 뭘 잘 모르고 모호하게 사는데, 다만 그 모호함이 싫어서 웃고 떠드는 게 아닐까. 웃고 떠드는 행동이야말로 확실하고 선명하고 어렵지 않고 그저 즐거우니까. 다들 너무 어려운 건 질색이니까. 


  네 마음이니, 진실이니, 삶이니 그런 것들 말이다. 따지고 따질수록 어렵다. 당신이 나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지, 거짓으로 대하고 있는지 판단하기도 어렵지만 거짓으로 대하고 있다고 해도 그게 정작 본심에서 나온 거라면 나는 그 사람의 본심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안개가 끼듯이 뿌연 삶 속에서 가장 확실하면서 좋은 건 잘 먹고 잘 사는 건데, 이상하게 삶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3. 


  가면. 소설에서 중요한 단어다. 이런 문장도 있다. '가면을 쓰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들어가면 가면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기옥은 알고 있었다.'(본문 27쪽) 가면을 바라보게 된다는 말은 이 문장의 다음에도 나오지만 자신의 가면을 마음대로 꾸밀 수 있다는 뜻으로 보였다. 자기 표정, 분위기를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해서 상황을 다른 식으로 흐르게 한다(되도록 본인에게 유리하게). 어째서 바라본다는 말을 썼냐면 제대로 보여야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바꾸기가 가능하니까. 


  자기 가면을 잘 볼 줄 알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 같겠지만, 기옥이나 태인을 보면 그렇지가 않다. 그들은 분명 자기 삶의 주인으로 보이지 않고 무언가에 휘둘리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자신의 삶에 휘둘리는 것처럼. 상호는 자기의 얼굴이 마치 노예의 관상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높으신 양반의 관상을 지닌 기옥과 태인도 자꾸만 자기 삶에 있어서 귀족처럼 굴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삶이 부리는 무언가일 뿐일까. 


4.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행복을 타인의 행복과 나란히 놓고 크기를 비교하길 잘 한다. 내가 가진 행복이 타인의 것보다 한참 작아 보일 때 불행의 크기는 이전보다 조금 더 커진다. 그런데 행복만 비교하길 잘 하는 게 아니다. 고통도 그렇게 하길 잘 한다. 내가 가진 고통은 희한하게도 타인이 가진 고통보다 크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럴 때에도 불행의 크기는 이전보다 조금 더 커진다. 어쩐지 불공평하다. 행복은 언제 즈음 커질 수 있을까?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