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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일기
  • 황정은
  • 12,600원 (10%700)
  • 2025-07-11
  • : 29,942

1. 


  이 에세이는 대한민국에서 극우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절대 읽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읽었다면 어떤 행동을 보일지 몇 가지 예상이 가는 반응은 있다.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평소에 냉소적인 성격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데 다만 부당한 일에 대해서 이 정도로 가슴 아파할 수 있는 게 희한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2024년 12월에 일어났던 불법 계엄은 부당함은 물론이고 국민의 생명, 존엄성 까지도 위협하는 사태였기 때문에 냉소적인 이라 하더라도 조금만 따지고 보면 충분히 섬뜩하게 느끼고 가슴 아파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황정은 작가만큼 그렇게 아파했었나 돌이켜보면 솔직하게 나는 그 정도까지는 하지 못했었다.


2. 


  회사 동료에게 이번 계엄의 위법성을 설명하다가 이유를 모르게 언짢아졌다고 했다. 이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말할수록 말하고자 하는 것이 가벼워지고 하찮아지는 것 같았냐고 묻자 어떻게 알았느냐고 반문한다. 나도 겪곤 하니까. 그 무서운 일을. 내게 너무나 중요한 그것이 당신에겐 중요하지 않다는 걸 목격하는 일, 사람의 무언가를 야금야금 무너뜨리는 그 일을. (본문 42-43쪽)


  노트에 따로 옮겨 적은 이 문장에 한 번 더 밑줄을 긋자면 '내게 너무나 중요한 그것이 당신에겐 중요하지 않다는 걸 목격하는 일'에 긋겠다. 계엄의 위법성에 대해서 회사 동료에게 자세하게 설명한 황정은 작가의 지인(친구 분일지도)은 자신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슬프거나 답답했겠다. 그런데 이런 일은 많은 사람들이 쉽사리 겪곤 한다. 


  자신의 아픔이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서 슬프고 억울한 경우. 스스로 목숨을 버린 사람들 중에도 그런 일을 많이 겪다가 더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겠다 싶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목소리를 자신 있게 외치는 일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헤아려 보는 일도 중요한데 다 알면서도 쉽지 않다. 때로는 그 일을 문학 작품을 접하면서 할 때가 있다. 


  타인의 생각과 시선을 내 들끓는 생각과 감정 안으로 들이지 않으면 내가 지나치게 확장된다. 가장 깊이 몰입할 때 내가 사라지고 새벽에 책을 읽을 때 그게 가장 잘되고 오로지 그것만이 목적이고 그래서 좋다. (본문 159-160쪽)


  황정은 소설가도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지나치게 확장되려는 나를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채우려고 노력하나 보다. 나의 노력은 나를 그다지 묽게 만들지 못할 때가 많지만 황정은 작가는 분명 다를 것이다. 아주 묽게 만드는 일이 가능하고 자주 그러도록 노력하지 않을까. 


3. 


  산다는 건 결국 더러워진다는 것이지만, 더러운 도랑물을 마시며 사는 것이지만,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물줄기, 다른 삶에서 내 삶으로 흘러드는 물을, 타인의 삶에서 흘러나온 피가 스며든 도랑의 물을 내 도랑의 물로 받아 마시며 사는 일이고, 그래서 내가 받아들이거나 말거나 삶이란 끊임없이 더러워지는 일이지만. (본문 114쪽)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바로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꼭 오염이라고 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전보다 불순물이 걷힐 수도 있고 영양가 없는 물에 영양분이 들어갈 수도 있는데, 항상 더러워지기만 하는 걸까. 하지만 삶은 쉽게 더러워지는 과정이라는 그 말은 조금만 파고 들어도 공감할 수 있었다. '더럽다'는 말에 반감을 가지기만 할 게 아니라 섞인다는 뜻으로 시선을 돌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모든 오염이 다 나쁘다는 말은 아니라는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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