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조리에 대해서 말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생명보다 돈이 우선하는 곳에서 돈벌이 수단으로 가치가 전락해버린 생명에 대해서 말하는 소설이다. 부조리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부조리에 대해서 쓴 소설가를 떠올릴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소설가는 프란츠 카프카인데 한국 소설가 중에서는 편혜영 소설가가 쉽게 떠오른다. 두 분 다 좋아하는 소설가다.
2.
메디컬 드라마에는 히어로가 등장한다. 어떤 경우보다 환자의 생명이 우선이고, 결코 비리를 저지르지 않으며, 어둠의 세력(?)과 결탁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는 히어로, 히로인이니까. 『죽은 자로 하여금』에도 히어로가 등장한다. 그런데 보다 현실적인 히어로다. 부족한 부분이 많고 한순간 어둠에 물든 적도 있고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더 힘을 가진 자 앞에서 주눅 든 적도 수차례다.
히어로의 이름은 '무주'이고, 이인시(市)의 선도병원에서 근무하는 직원으로 학력이고 능력이고 보잘것없다. 그런데 그는 끝까지 권력에, 관행에 순응하기보다 자기 목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인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특히 선도병원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안다. 모를 수가 없다.
3.
이인시는 유령 도시다. 호황이던 조선소가 폐쇄한 뒤부터 도시는 활력을 잃었다. 거리를 배회하는 무직자가 늘고 인구는 날이 갈수록 감소한다. 문을 닫은 상가와 세입자가 들지 않는 다세대주택이 즐비하다. 선도병원도 장사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도시에 생기가 없고 희망이 없다. 정부도 죽어가는 도시를 제대로 들여다 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선도병원에서 먹고 살기 위해, 추락하지 않기 위해 타락을 선택한 이들이 여럿이다. 이직을 하고 싶어도 받아줄 곳이 있을지 의문이며, 들키지 않고 관행을 따르면 어쨌든 먹고 살 수는 있고, 작든 크든 보상이 따르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떠나지도 못한다.
이곳에서 근무하던 무주는 실체를 아니까 외부에 알리고 싶은 생각이 크겠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아마 그런 일이 있었음을 알게 되더라도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걸로 예상이 간다. 모두들 자신의 고민을 떠안고 살기에도 버겁기 때문이다. 무주는 아마 그 사실이 제일 무서웠을 것이다. 억울한 일에 외부 사람들은 생각보다 관심이 적거나 없다는 사실.
4.
그래도 이 소설은 카프카의 소설보다는 밝은 편이다. 희미하더라도 무주라는 아주 작은 빛이 있는데, 그 빛을 꺼버리는 건 세상의 무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