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북극해를 탐험하던 왈튼 선장에게 어느 이방인 혹은 방랑자가 자신이 겪은 불행에 대해서 들려 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아직 이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을 괴물의 이름으로 알고 있는 점이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창조한 과학자의 이름(정확하게 빅터 프랑켄슈타인)이고 괴물에게는 이름이 없다. 시종일관 주인공은 괴물을 '그놈'이나 '악마'로 부르고 한번도 이름을 붙여준 적이 없는데 이는 안타까운 사실이다.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이나 다른 사람들이 그를 보면서 부르는 이름이지만 괴물의 사정을 알게 된다면 그를 마냥 그런 식으로 부를 수는 없게 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그'의 외형은 2.5 미터에 달하는 거구에 시체를 되살려 놓았기 때문에 섬뜩하고 혐오스럽다. 하지만 그는 결코 지능이 낮지는 않다. 이건 내가 가진 그에 대한 편견이었다. 말을 어눌하게 하면서 이상한 자세로 걸어 다닐 거란 착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지능이 높고 섬세한 감수성을 가졌으며 말로 생각과 감정을 묘사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체력은 인간의 능력을 한참 뛰어넘는 수준이다.
한 가지 더 의외의 사실을 덧붙이자면 작품의 주요 배경이 스위스라는 점이었다. 아름다운 경관으로 잘 알려진 스위스에서 괴물이 탄생하고 그곳에서 주인공과 괴물이 대립하는 장면이 나오는 게 의외였다고 느낀 게 이상한 걸까. 프랑켄슈타인은 자연철학과 화학 분야에 몰두한 과학자였는데 죽은 물체에 생명을 불어 넣어 창조주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소설의 제목이 "FRANKENSTEIN ; OR THE MODERN PROMETHEUS"인 이유가 뭘까.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으로 동생과 함께 최초로 인간을 창조했으며 인간에게 불을 전해 주었다. 아마도 프랑켄슈타인이 시체를 살아 있는 상태로 만든 최초의 인간이기 때문에 현대판 프로메테우스라는 제목이 지어졌나 보다. 비록 괴물, 그러니까 그의 외형은 끔찍함 자체였으나 성정이 착하고 배움에 대한 의지가 대단했다. 그는 세상에 나와서 사람들을 통해 언어와 지식을 습득했는데 그러면서 자신의 외모와 비참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배우고 생각할수록 절망에 빠지게 되는 슬픈 아이러니. 산속에 은둔하면서 살았으면 몰랐을 자신의 처지를 그는 세상에 나가 지식을 습득하면서 절절히 느끼게 된 것이다. 그는 배움을 통해 짐승에서 인간이 되었으나 막상 인간들에게서 천대를 받았기에 착한 성정은 점점 변해갔다. 사람들은 그를 겪어보기도 전에 외모로만 판단을 했다. 모두들 그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고 폭력으로 대응했다. 그의 말을 듣기조차 싫어했다.
외형만 괴물이었지 심성은 오히려 웬만한 사람보다 착했던 그는 성정까지 괴물로 변해갔다. 생명을 낳기만 하고 사랑과 책임감을 쏟아 붓지 않은 빅터에게 그는 처절하게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그의 편이 있었다면 그는 진짜 괴물까지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슬픔을 낳을 수 있다"는 그의 절규가 더욱 안타깝게 들렸다. 슬픔과 원망을 모르고 가질 생각조차 없었던 그가 복수를 결심하면서 슬픔을 낳을 수 있다고 외쳤다.
그는 나중에 이르러 빅터에게 자신과 처지가 같은 여자를 한 명 더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녀와 함께 산속으로 들어가 서로 의지하고 인간 세상에는 절대 나오지 않겠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 전에는 빅터에게 자신이 빅터의 실험실에서 나와 세상에 나가 살면서 겪었던 불행을 바르고 섬세한 언변으로 들려 준다. 빅터는 그의 주장에 설득 당해 한때는 괴물이 될 여자를 한 명 더 만들려고 마음 먹고 실행에 옮겼으나 더 이상의 불행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일을 중단한다.
이야기는 비극의 연속이다. 시체를 살아 있는 상태로 만들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진 주인공의 호기심부터 비극은 시작되었다. 괴물의 비참함은 그가 만든 것이 아니며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었고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도 만들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게 때로는 더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보이는 건 매우 중요하다. 그의 추함은 극도의 비참함을 낳기도 했으며 그는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기 때문에 동정을 느끼지 못한다며 두 손으로 빅터의 두 눈을 가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알프스 산맥의 황량한 산과 거친 빙하를 가까이 할 수 없는 머나먼 대상으로 여긴 만큼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을 멀리 했다. 하지만 그에게 산과 빙하는 유일한 피난처였다. 저자가 작품의 주요 배경을 거칠고 황량한 자연으로 택한 이유는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에게 그런 곳들이야말로 마음의 안식처이기 때문이었음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스위스는 의외외 장소가 아니라 적절한 장소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