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이제껏 읽은 추리 소설도 얼마 되지 않는다. 추리 소설은 어쩐지 인물의 심리, 내면 세계를 묘사하는데 힘을 기울이기보다 얽히고설킨 인물들의 관계와 벌어진 사건, 상황에 대한 치밀한 묘사에 힘을 기울인다는 편견(?)이 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 아주 단순한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인물들의 속내를 그야말로 속속들이 알 수 있다면 물불가리지 않고 빠져들어 읽는 편이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활자잔혹극』은 나의 편견을 깨뜨려준 추리 소설이었다. 치밀하긴 하지만 내가 말하는 치밀함은 인간 심리에 대한 부분이 더 컸으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함이나 마지막에 드러나는 반전은 이 소설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의외였다. 그런 게 거의 없는데도 빠져들어 읽을 수 있는 추리 소설이라니. '유니스 파치먼'이라는 살인 사건의 가해자가 지닌 특이한 삶의 이력은 이 소설을 빠져들어 읽을 수 있게 만드는 유력한 힘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녀는 문맹(!)이다. 읽는 법과 쓰는 법을 거의 모른다. 그런 사람이 사람들과 어울려서 지내려면 읽고 쓰는 법 외에 다른 능력과 감각을 부지런히 익혀야 하는데 실제로 그녀는 그랬다. 하지만 여기서 어울려 지낸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나도 안다. 그녀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기보다 사람들을 이용해 먹기를 즐겼다. 끈덕지게 살아남으려는 삶의 의지가 하필이면 그런 식으로 드러난 점이 안타깝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글을 배우지 못했고 배울 생각도 하지 못했던 그녀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그녀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방어 능력이나 조심성, 경계심이 깊어졌다. 그녀가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은 소수였다. 그녀는 운 좋게도 커버데일 가(家)에서 가정부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게 되지만 글을 읽고 쓸 줄 알며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심이 깊었던 커버데일 사람들 때문에 여러 번 곤혹스러운 일을 당하게 된다. 이상하지 않은가. 다른 사람의 배려가 한 사람을 오히려 곤혹스럽게 만들었다니.
그 이유는 단순했다. 커버데일 사람들은 글을 알고 유니스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이 자신을 쉽사리 우습게 여길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도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 또 조심하면서 살았다. 커버데일 사람들은 그녀의 조심성과 말 수 없음을 오히려 측은하게 여겨 신경 써서 대해주려 했지만 그런 방식은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리는 짓과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좀 무신경한 사람이었더라면 유니스 파치먼을 벼랑 끝으로 내몰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니다, 애초에 그들과 유니스 파치먼은 만나서는 안 될 관계였다. 제일 좋은 가정은 유니스 파치먼이 어렸을 때부터 글을 배워 세상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래서 긍정적인 소통을 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가정이 부질없다는 점을 알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글을 읽고 쓰는 일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람이 두 눈으로 무언가를 보면서 세상을 배울 수도 있고 두 귀로 들으면서 세상을 배울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은 글을 읽고 쓰게 되면서 발전을 이룬다. 그리고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면 자기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정보를 다량으로 습득할 수 있다. 다른 나라,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얻고서 그들을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면 세상을 이해해보려는 시도가 어느 지점에서 막히게 된다. 저자는 유니스 파치먼이 글을 읽고 쓸 줄 몰랐으며 그것을 배워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며 윽박지르는 어조로 글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글이 가둬버린 세상의 밖의 것을 보고 느낄 줄 알았다는 글을 썼다. 그녀가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상태로 지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납득이 가능하게 설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저지른 살인이 정당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을 안다.
살아온 삶이 극명하게 달랐던 사람들이 서로를 오해하고 착각했구나, 너무 큰 오해와 착각을 했구나, 그런 안타까움이 들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글을 읽고 쓰는 일이 세상을 한정적으로 가둬버리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배워야 안전한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은 작가도 알고 독자도 알고 그 누구도 모르지 않으리라. 울타리 밖은 무법지대다. 그곳에서 사람에 대한 이해, 관심, 사랑을 배우지 못한 누군가는 몰랐기 때문에 쉽사리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