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비가 많이 온다. '온다'는 표현보다 퍼붓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빗물이 차고 쪽으로 난 지붕을 쉬지도 않고 때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외할머니 댁은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빗물이 양철 지붕을 때리는 소리 때문에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한여름의 장마 기간에 그 허술한 집이 비바람을 어떻게 견뎌내는지 모르겠다.
아파트에 살 적에는 비가 많이 와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생각도 많아지지 않았다. 빗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았다. 부실 공사로 짓는다고 해도 튼튼하기 그지없는 집이었다. 우리 가족의 형편처럼 약한 집에 들어앉아 있으니 빗소리도 잘 들리고 생각도 많아진다. 나는 얼마 전부터 황인찬 시인의 『사랑을 위한 되풀이』를 읽었다.
시집 중간에 「죄송한 마음」이라는 시가 있다. 오늘 같은 날에 읽으니 명확하게 잘 읽히는 시다. 사람이 슬픔 속에 들어 앉아 있다가 눈물을 흘리면 그 눈물 속에서 슬픔은 불어난다.(빗소리의 한가운데 들어앉아 있으면 생각이 많아지듯이) 시에서는 물에 불린 미역이나 흰 쌀이 나온다. 그리고 시인은 그것으로 미역국을 만들고, 흰 쌀밥을 지어 먹는다. 사람은 불어난 슬픔을 먹고 더 슬퍼지다가 시간이 흐르면 그 슬픔도 서서히 식는다. 미역국이나 흰 쌀밥도 따뜻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식듯이.
슬픔이 식었을 때엔 슬픔을 느끼기가 어렵고 생각도 많이 정리가 된 상태다. 당신을 떠올릴 때 들던 슬픔이나 생각 따위가 마치 뜨거운 미역국과 흰 쌀밥이 식듯이 식어버렸을 때 시인은 죄송하다는 표현을 쓴다. 이 시를 읽다 보면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쉽고, 또 사람의 인생이 떠오르기도 한다. 온기를 가지고 태어나 사랑을 하는 순간에 몹시 뜨거워지고 열심히 움직일 때(살 때)에도 뜨거워진다.
그러다가 나중엔 온기를 잃는다. 온기를 가졌다가 온기를 잃는 과정이 사람의 삶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죄송한 마음」이라는 시는 읽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시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긴 해도 이 시에서는 찬란한 생애보다 슬픈 생애를 떠올리기가 더 쉽다고 생각한다. 슬픔이 계속 불어나는 이미지가 연상 되는 시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여러 편의 시를 두고 리뷰를 쓸까 했는데, 좋은 시가 많아서 리뷰도 너무 길어질 것 같고, 또 이 시 한 편만 해도 충분히 좋기 때문에 욕심을 낼 필요가 없어졌다. 음, 다른 독자 분들도 비가 많이 오는 날이나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 이 시를 읽어 보시면 좋겠다. 그런 날에 읽기에 제격인 시다.
그리고 이전에 읽은 황인찬 시인의 시집에서 동성애를 떠올리게 만드는 시를 읽었을 때 내가 제대로 읽은 게 맞나? 하고 자문한 적이 있었는데, 『사랑을 위한 되풀이』를 읽고 나니 잘못 읽은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사랑은 육체를 가진 무엇에라도 줘버리면 된다는 시인의 생각대로 라면 동성애는 사랑의 한 방식일 뿐이고 잘못된 것은 아니다. 죄가 아니다. 사랑은 그냥 사랑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