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렸는데 마지막 두 편은 미완 소설이다. 완성되지 않은 소설에 대한 감상을 적기가 두려워서 앞에 세 편에 대한 감상만 적는다. 김승옥 소설가라면 그를 팬이라고 자처하는 독자도 많고 소설가들 사이에서도 존경 받는 분인 모양이다. 나도 「무진기행」을 참으로 좋아한다. 정말 좋아하는 소설을 떠올리면 몸속이 간지러운 느낌을 받는데 왜 그럴까? 몸속이 간지러운 느낌이 없으면 그 소설은 읽고 나서 그저 그랬다고 기억하게 된다.
첫 번째 단편 소설인 「환상수첩」에서는 일생을 걸고 목숨을 걸 단 하나의 얼굴을 갈구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서울대 재학생이다. 김승옥 소설가도 서울대 졸업생이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얼굴이란 가면이고 자신의 생활 형태이며 역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리고 그 자체로 살아지는 것이고 나를 살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감상을 적기 전에 잠깐 떠오르기로는 얼굴이란 남 앞에서 자신 있게 드러낼 수 있는 내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뭐, 꼭 자신 있다고 까지 할 수 없을지라도 그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모습. 그런데 주인공인 '나'는 문학을 하는 자신의 모습도 상상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서기니 대의원이니 교수니 비행사니, 뭔가 딱 내세울만한 자기 얼굴을 찾기가 어려워서 방황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울대학교 학생이면서 그런 걱정을 하는 거냐고, 남의 속도 모르면서 괜히 하고 싶어진다.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 졸업생이면 어디에서도 환영받을 것만 같은데.
'나'는 그러나 무슨 직업을 택해서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보다도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깊게, 깊게 했는지도 모른다. 주인공의 친구 중에서는 한 여인의 남편이 되어서 돈을 벌고 착실히 살려는 마음을 먹었다가 뜻밖의 사건으로 목숨을 빼앗긴 이가 있다. 아, '윤수'다. 윤수는 자기의 얼굴을 방황 끝에 찾은 셈이었다. 하지만 신은 야속하기도 하시지. 이 소설은 참으로 우울하다. 하지만 애매모호한 우울함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진단 명이 있는 우울함이다.
두 번째 단편 소설인 「다산성」이나 세 번째 단편 소설인 「재룡이」를 읽고 나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떠올리게 된다. 인간은 복잡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무어라 정의내릴 수 있는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다산성」에서 어느 연극 연출가는 토끼에게도 그런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잘만 하면 연극에서 토끼를 연기자로도 써먹을 수가 있다고. 소설이든, 연극이든 그것을 읽고 보는 독자는 등장인물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읽고 보게 된다.
「재룡이」에서는 전쟁을 겪고 난 이후 순박한 청년에서 백팔십도 인간성이 뒤바뀌어버린 '재룡이'라는 청년이 등장한다. 사람의 성질이라는 것이 주변 환경이 확 바뀌지 않으면 쉽사리 바뀌지 않는데 괴물 같은 시국이 엉망이면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을 소설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물론 전쟁이나 무서운 사상이 휩쓸고 가는 시국 정도는 되어야 한다. 마을에서 무슨 싸움이 일어났다고 해서 사람의 성질까지 바뀌진 않는다. '재룡이'가 군인이 되어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면 자기 마을에서 순박함을 그다지 잃지 않고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인간성이 바뀐 '재룡이'의 삶의 방식은 어떻게 변했나? 부지런함에서 게으름으로, 순박함을 잃지 않은 행동들이 천박하고 경박한 행동들로 바뀌었다. '재룡이'의 어머니는 그 점이 지독하게도 슬프다. 나 같아도 그렇겠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면 그가 낯설고 한편으로 무섭기도 하겠다. 예전의 모습이 많이 그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