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양자의 불확정성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것이 확정적이라고 가정할 때, 초기 조건을 안다면 그 후 모든 시간 단면의 상태를 계산해낼 수 있지. 만약 외계의 과학자가 수십억 년 전 지구의 모든 데이터를 갖고 있다면 그는 오늘날 이 사막이 존재한다는 것을 예측해낼 수 있을까?"
Ice가 대답했다.
"당연히 그럴 수 없죠. 이 사막의 존재는 지구가 자연적으로 진화한 결과가 아니니까요. 사막화를 일으킨 건 인류 문명이고 문명의 행위는 물리학의 법칙으로는 예측할 수 없잖아요."
"좋아. 그런 우리와 우리 동료들은 어째서 물리학의 법칙만으로 현재 우주의 상태를 해석하고 우주의 미래를 예측하려는 거지?"
Ice는 깜짝 놀랐다. 지금껏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건 물리학의 범주를 넘어선 일이 아닐까요? 물리학의 목표는 우주의 기본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잖아요. 인류가 지구를 사막화시킨 건 물리학으로 계산해낼 수 없지만 역시 법칙에 따라 진행되었겠죠. 우주의 법칙은 영원히 불변하니까." (『삼체 3부 - 사신의 영생』中)
『삼체』 마지막 권에 이런 대화가 실렸다. 과학자들의 이 대화를 통해서 독자는 이 책이, 그리고 앞으로 인류가 어떤 이야기를 써나갈지 예측할 수 있다. 우리의 행동에 따라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예측이 가능하면서도 모든 걸 제대로 예측할 수는 없기 때문에 우주는 그야말로 베일에 싸인 신비로운 영역이라는 게 대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건 결코 시시한 말이 아니다.
이야기의 막바지에 나오는 '질량의 유실'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말은 우주에 있는 고도의 문명이 소우주를 창조하면 대우주의 질량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폐쇄 상태의 우주가 열리고 무한히 팽창함을 뜻한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가? 그야말로 우주가 다같이 영원한 죽음의 길로 들어선다는 말이다. 이 상태를 그대로 방치하면 우주에는 빅크런치가 일어나지 못한다.
빅크런치는 우주 탄생의 대폭발(빅뱅)과 반대로 온 우주가 블랙홀의 특이점과 같이 한 점으로 축소되면서 종말한다는 가설이다. 한 마디로 빅크런치가 있어야만 다음에 우주의 재탄생이 일어날 수 있다. 태양계의 인류는 먼 우주에 존재하는 고도의 문명(삼체 문명도 아니다.) 때문에 멸망하고 우주를 항해하던 은하계의 인류만 새로운 삶을 이어가는 게 이 책의 마지막 내용이다. 윈톈밍에게서 별을 선물받았던 청신은 삼체 문명이 만든 소우주에서 관이판과 함께 삶을 이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소우주의 창조가 대우주의 영원한 죽음을 초래하기 때문에 그녀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관이판과 함께 소우주에서의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게 아니라 다시 대우주로 돌아가 소우주가 대우주에서 가져온 물질을 돌려주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독자는 이러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어떤 삶의 방향(행동, 선택)이 엄청난 긍정의 결과 혹은 반대로 엄청난 부정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 명의 인간이든, 집단이든 인간의 선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우리의 선택이 후세의 환경과 삶을 변화시킨다.
인간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드넓은 우주에서 아주 미미한 존재이지만 삼체나, 다른 고도의 문명만큼 혹은 그들보다 더 발전하게 되면 우주의 이야기를 새로 써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그 누가 제대로 예측할 수 있을까? 소설 속 '지자'조차도 해낼 수 없었던 그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