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소설에 나오는 어떤 등장인물과도 비슷하지 않았다. 누구를 때린 적도, 맞은 적도 없고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반항적이지도 않았다. 자살한 친구도 없었다. 하지만 소설 속 이야기를 픽션이라고만 믿기에는 매일 그런 ‘사실’들을 언론에서 전해 듣는다. 그래서 읽는 동안 불편했다. 다시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면, 아직 왕따가 유행하기 전이었지만 우리 반에는 모두가 싫어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쉬는 시간이면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은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난 ‘널 친구로 생각하는 건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멀어지게 되었다. 나는 가식적인 겁쟁이였다. 지금 이 순간에 용기 없음은 나중에 다시 회복할 수 없다. 항보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이걸은 매순간 용감해야 할 것을 배운다. 거짓, 부정, 타락은 항보가 말하는 것처럼 오랜 세월동안 세계를 지배했다. 항보의 세계인식에 대한 이걸의 댓글이 지극히 당연한 소리임에도 울림이 있는 건 누구나 다 알아서 입에 올리지 않는 이야기를 다시, 뻔뻔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 때문이다. 살아 있어 행복하다는 너무도 당연한 말, 잊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