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조선으로
곰두리맨 2025/01/23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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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조선으로
- 이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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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 - 202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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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80 여 년 전의 이야기. 나라를 잃은 슬픔과 차별, 배고픔과 생명의 위태로움까지 견뎌내며 해방을 맞이했지만, 어떤 이들에게 해방은 더 큰 좌절과 슬픔, 한탄만을 안겨주었다.
권력을 가지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었던 미군정과 주요 요직자들은 전재민들(귀국 동포, 월남민)에게 관심을 두고 따스한 손길로 도와주지 않았다. 올바르지 못한 체제 유지와 권력 획득(유지), 개인적 부의 축재에만 관심을 가진 자들이 분열된 조국을 안정시키고, 양극화를 해소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 피해는 언제나 고스란히 힘없고, 연줄 없고, 돈 없고, 정보력 없는 다수 민간인의 몫이었다.
P56 해외에 가서 고생하다가 고국이 해방되었다고 기쁘게 돌아오니 기다려주었으리라고 믿었던 고국에서 주는 선물은 주택 대신에 길 위의 거적과 방공호요, 따뜻한 음식 대신에 추위와 (굶)주림뿐이요, 따스한 동정 대신에 얼음 같은 학대와 멸시뿐이오. 그 말로가 참혹한 죽음이라는 오늘의 이 현실은 참으로 통한할 일
P78 국공내전 속에서 농토마저 빼앗긴 채 살기 위해 돌아와야만 했던 자, 위험천만한 밀선에 올라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의탁할 가족이나 친족이 없던 자, 강제 동원지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으나 귀환과 동시에 실업에 직면한 자, 그리고 초기 월남민 가운데 이른바 `생계형 남하 집단`등이 바로 해방 공간의 `전재민` 집단이었다.
P94 1945년 8월 24일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조선인 3,735명, 일본인 255명 탑승. 사망 조선인 524명, 일본인 25명(비공식 5천여 명). 미군이 투하한 항공 기뢰 때문인가? 패망에 대한 일본의 조선인에 대한 '분풀이'이자 '계획적인 범죄'로 봐야 할까?
P116 1945년 10월 들어 일본 군부대원과 경찰의 송환이 끝나고 '민간인' 차례가 다가오자, 미군정 당국은 한일 간의 모든 재산 반출을 금지할 것이며 송환 예정자에게는 '현금 1,000엔(원)'과 '손에 든 수화물'만 허용하겠다고 발표. 천황의 항복 방송을 듣자마자 눈치 빠른 총독부의 고관대작과 의사, 변호사, 기업가와 대기업 간부들은 몰래 재산을 처분하고 이것을 귀금속과 문화재로 바꾼 뒤 밀항단을 이루어 미군이 진주하기 전에 기어코 빠져나가는 모습. . .
인간 본연의 '악'과 극도의 이기심이 느껴졌다. 살려고 발버둥 치는 그것 자체를 무조건 죄악으로 여길 순 없지만 불법과 편법, 돈, 인맥 등을 이용하여 자신의 부와 기득권을 놓지 않는 모습에선 그 누군가가 떠올려지기도 했고,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급품(식량)과 의약품들을 횡령하거나 중간에 가로채기해서 되파는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거나, 적산가옥 등을 부당하게 편법과 불법(공사문서 위조)으로 여러 채 사들여 재산을 늘리려고 했던 자들. . . 땅에서도 모자라 배 위에서도 해적질로 물품을 빼앗기까지. . .
P152 과거의 기록 속에서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볼 때면, '역사란 결국 시공간을 넘나드는 도플갱어들의 재현'이 아 ·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로 선한 사람들보다는 역사 속의 악인들이 마치 오래된 유럽 건물 꼭대기의 빙글빙글 도는 시계탑 인형들처럼 주기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P226 관유지나 국유지는 결국 조선 왕가의 땅이거나 선조들의 능, 원, 묘역이었는데, 일본인들은 이것들을 맘대로 유곽, 골프장, 공원 녹지 등으로 바꾸어 버렸다. 일본인들은 조선왕조의 전통적인 능, 원, 묘를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분묘 또한 이장비도 없이 맘대로 처분했다.
P288 해방 후 약 250만 명이 남한으로 돌아온 가운데 타지에는 여전히 '남은 자, 남겨진 자, 돌아오지 못한 자'들이 있었다. 우리는 해방 후 돌아온 사람에게도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타지에 남은 이들은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또한 살피지 못했다. 그 결과 해방 후 조국으로 돌아온 자에게는 '사회적 소외'가, 미처 돌아오지 못한 자에게는 '비정한 기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듯 해방과 분단은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재편'이 등시에 이루어진 시공간이기도 했다.
'연구서' 같기도 하고 '대중서' 같기도 한 이 책은 내게 흥미와 부담을 동시에 안겨준다.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책을 읽는 것에 대한 부담과 후회가 조금씩 밀려오고 있었다. 불법과 편법을 동원한 상식을 초월하는 부의 증식과 이와는 정반대의 상황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1945년 해방 이후 (안타깝게도) 계속 현재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쉽사리 책을 덮기 쉽지 않았고, 다시 책을 펼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광복의 그 시대를 내가 살고 있었다면 나의 삶은 어떠했을까? 머리가 무겁고,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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