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체질의학의 Key_체질맥진』 (행림서원) 서평
- 수원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새날한의원 원장 현승은
한국 한의학의 독창적인 의학체계인 사상의학은 한의사가 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이수해야하는 정규 교육과정이자 국가고시 과목이다. 그렇다고 모든 한의사들이 체질의학에 관심을 가지고 환자들의 체질을 구분하며 임상을 하지는 않는다. 사상의학을 배웠지만 자신의 진료 방법론으로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체질의학의 난점은 체질의학의 핵심이 되는 체질감별의 방법론에 있다. 이제마는 『동의수세보원』을 통해 체질감별의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학들은 체형측정, 안면특징, 성격유형, 설문방법까지 다양한 체질감별 방법론에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기준들은 과연 맞는가? 그러한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과연 체질이란 개념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들게 되고 결국 체질의학을 포기하게 된다.
체질감별에 확실한 방법론이 있는가? 권도원 박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체질을 구분하고 각 체질에 따른 섭생법 지도와 체질침 치료를 중심으로 하는 8체질의학을 창안했고, 우수한 치료 효과로서 자신의 8체질의학을 증명해왔다. 과연 그의 체질감별 방법은 옳은 것일까? 많은 한의사들이 열광하고 재현하고 있는 8체질의학의 놀라운 치료 효과가 가설연역적으로 체질 개념의 실재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8체질이 실재함을 증명하는, 체질감별의 핵심이 바로 8체질의학만의 독특한 ‘체질맥진’이다. 제 아무리 체질의학이 우수하다 하더라도 체질을 감별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 아니겠는가. 사상의학을 하면서 체질감별에 어려움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정형화된 8체질의 체질맥진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8체질의학은 사상의학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8체질의학은 권도원 박사의 공식적인 논문 몇 편 외에는 한의계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90년대 초반 한의사통신망을 통해 조금씩 8체질의학의 체계가 알려지고, 8체질 임상을 하는 한의사들의 개별적인 저술은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8체질의학을 배울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기회는 없었다. 권도원 박사 스스로도 제자를 둔 바가 없다고 말할 정도이다.
공식적인 교육기회는 없었지만 8체질 임상을 하는 한의사들은 어느 정도 존재한다. 물론 한의계 전체를 보면 매우 적은 수이지만, 8체질의학에 발을 들인 한의사들은 자신의 실력을 배양하기 위한 배움의 기회에 목말라 있는 것이 사실이다. 8체질의학의 문을 여는 열쇠이자 핵심인 ‘체질맥진’은 숙련된 사람에게 직접 지도받지 않고 지식적으로 배워서는 할 수 없다. 또한 부단한 수련과 검증을 통해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한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 8체질의학 보급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이강재 원장의 『8체질의학의 Key_체질맥진』은 이러한 8체질 입문자들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 줄 역작이다. 20년간의 8체질 임상경험을 통해 도달한 구체적이고 세심한 진맥 노하우를 설명하는 교과서인 동시에, 치밀한 자료 수집과 분석을 통해 체질맥진의 연원과 형성과정의 역사를 계보학적으로 탐구한 연구서이다.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달리, 체질맥진은 어느 날 홀연히 권도원 박사에게 현몽하여 떠오른 것이 아니라 최초에 비교맥진법을 참고하여 구상되었다는 점, 8체질의학의 장부이론의 변천처럼 체질맥진도 함께 수정되어 왔다는 점, 또한 ‘토음체질은 희소하다’는 권도원 박사의 발언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등, 저자는 곳곳에서 조종(祖宗)인 권도원 박사와 대립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은 반세기에 이르는 8체질의학계 역사에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는 발칙한 학문적 도발이자, 의사학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기념비적인 역작이다.
수준 높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책 자체는 초심자도 아주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문답식으로 체질맥진의 핵심을 짚어주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미덕은 그가 그간에 발간한 8체질의학 서적의 성격에서도 드러난다. 8체질의학체계에 대한 공식적인 교과서가 없는 상황에서 후학을 위한 교재로서 발간한 『학습 8체질의학』 시리즈, 공식적으로 논의된 적 없는 체질별 속성에 대하여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쓴 『8체질이 뭐지? 내 체질은 뭘까?』, 8체질 한의사들의 임상 지침이 되어줄 8체질 최초의 임상사례집 『임상 8체질의학 I/II』. 저자는 8체질의학의 조종과 주류의 폐쇄적인 비밀주의와 무비판적인 교조주의에 반대하며 자신이 얻은 지식을 나누는데 있어서 아낌이 없다.
이강재 원장은 현재 ‘임상8체질연구회’를 통해 회원들과 함께 8체질 임상 사례를 나누고 토론하며 임상연구를 심화하는 한편, 정기적으로 체질맥진법을 직접 실습하는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8체질에 대한 갈증으로 온몸으로 바닥을 밀며 나아갔던 이강재 원장은 스스로를 달팽이(蝸牛)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