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오스카 로메로 신부의 일대기를 담아낸 영화가 국내에 개봉되면서 관객들로부터 한동안 적잖은 주목을 받았었다. 아마 영화를 감상했던 독자들이라면 군인들이 총으로 통행을 가로막는 위협에도 결코 의연함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서있는 로메로 역을 맡은 배우의 인상적인 모습을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하느님의 종으로 살아가며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서 사회정의를 호소하던 그의 참 모습을 알고 있는 비종교인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오스카 로메로! 그는 산살바도르의 대주교로서 미사를 집전하던 도중에 뜻하지 암살을 당하면서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던 인물이다. 그는 살아생전 냉혹했던 군사독재 정권의 불의에 비폭력투쟁으로 몸소 항거했으며,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과 기득권층들로부터 노동의 착취와 억압을 받아야 했던 대다수의 민중들의 인권해방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지속적으로 실천해왔다. 그가 피살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미국을 비롯한 남미전역에서는 그동안 그가 행해왔던 거룩하고 숭고한 발자취를 근거로 삼아 성인으로 추앙해왔으며 한편으로 해방신학의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있다. 그리고 작년 5월에 그의 죽음을 두고 종교적인 이유가 아닌 정치적인 것이라는 일부 왜곡된 시각을 불식시키면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시복이 거행되었다. 이 책은 가장 낮은 이들의 대변자로서 하느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만들어준 로메로 대주교의 일생을 다룬 평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순교의 의미를 마음 깊이 되새겨보고 또한 점점 각박해지고 건조해지는 우리의 사회에 더불어 살아가려는 이타적인 삶을 도모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오스카 로메로는 상당히 보수적인 성직자로 알려져 있으며 진보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차 그가 예언자이며 순교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을 만큼 풍족함이나 부유함과는 거리가 먼 가난한 서민층의 자녀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을 거치는 동안 부모세대로부터 청빈과 금욕적인 삶을 교육받으며 자랐다. 특히 그는 심각한 질병을 앓으면서 몸이 병약했는데 그 때문에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없어서 지역가정교사의 도움으로 간신히 초등교육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그가 학업보다는 일을 배우기를 원했기 때문에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목수의 도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 시기에 성당에 다니면서 신학도의 꿈을 가지게 되면서 당시 예수회가 운영하는 산살바도르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신학교 시절 그와 함께했던 친구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로메로는 신앙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규범을 철저히 지키면서 과묵하고 조금은 수줍음을 타는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신부가 된 뒤에도 그는 교회활동과 유사한 모임은 전혀 참석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교구도 없었고 심지어 성직자 모임에 나가는 것을 꺼려왔는데, 특히 정치개혁이나 인권향상을 모토로 급진적인 성향을 띠고 활동하는 동료 사제들과 마주치는 것을 무척이나 두려워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엘살바도르는 독재정권이 유지되고 있었고 정부에 의해 노동자가 학살당하는 여러 사건이 벌어졌었는데, 그는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시시때때로 신앙적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교회가 이런 사안에 대해 정치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정부를 옹호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그들로부터 비판적인 시선을 받기도 했다.
일부 언론의 보도를 보면 오스카 로메로가 암살당하기 이전의 여러 행적을 두고 개혁성향의 변화를 추구하는 해방신학의 직접적인 관련자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사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이상을 실천하며 그리스도인으로 자기완성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가톨릭 안에서도 보수적 경향이 강한 오푸스데이의 회원이다. 그런 보수적인 종교인의 모습에서 순교자로 탈바꿈의 계기가 된 것은, 자신과 가까운 사이였던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가 사전에 계획된 암살을 당하는 사건을 접하면서였다. 이후 그는 그와 같은 불의의 사건이 마침내 교회 전체를 충격에 빠트렸고 정부의 과잉폭력을 비난하는 전국적 시위를 촉발하게 했다는 점과 무엇보다 전례 없는 신성모독임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정부가 주최하는 어떤 공식행사에도 참석하지 않겠다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로메로는 진실이 없다면 정의도 없다고 생각했고, 매주 강론과 교서를 통해 엘살바도르의 정치적 혼란을 비판하며 하느님의 말씀과 사회교리를 올바로 알리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그를 신뢰하던 대중들은 환호했고 위기를 느낀 독재정권은 사회의 안정이라는 명목으로 자리를 마련하여 그와 대화를 시도하며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했지만 실제로 민중들을 향한 정부의 폭압의 행태는 더욱 교묘하게 진행되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로메로는 스스로가 사제로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위해 행동할 의무가 있음을 천명하고, 끊임없는 비방과 살해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전보다 더 적극적인 자세로 독재정권의 만행을 규탄하는데 앞장선다. 그리고 교회가 힘없는 노동자와 그리고 가난한 노인과 아이들과 함께하는 사목적인 도구가 되기를 염원했다. 결국 이런 실천적 행동으로 그의 순교는 종교인뿐만 아니라 비종교인에 이르기까지 적잖은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그런 연유에서 이 책으로 인해 많은 독자들이 종교와 신앙의 본질을 깨닫는 유익한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