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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없는 만남, 그것은 진정한 사랑은 물론이고 진정한 사랑에 필연적으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쉽게 얘기해서 대중가요 중에 "무조건 무조건이야!"라는 가사가 단적으로 역설하는, 역설적으로 조건 없는 사랑, 조건 없는 우정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로 들린다.

키케로는 <우정에 관하여>에서 1)'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사랑한다. 그것은 사랑한 대가를 얻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애(自愛)는 자연(自然)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이와 똑같은 감정을 우정에 적용하지 않으면 진정한 친구를 결코 구할 수 없다."(80절)고 못 박는다. 결국 진정한 친구는 제2의 자아라는 등식을 제시한다.

그리고 자애는 본능이며, 본능인 자애는 자연임을, 곧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독자들을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로 안내한다. 곧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우정이 자연스러워야 하는 것임 동물들-정확히 짐승들-의 생태를 예로 든다.

"이 점은 하늘에 사는 것이든 물속에 사는 것이든 뭍에 사는 것이든, 또 길들여진 것이든 야생의 것이든 짐승들도 마찬가지라네. 우선 짐승들은 모두 자신을 사랑하네. 이런 감정은 모든 생물이 똑같이 타고났기 때문이네."(81절 전반부) 

인간도 동물에 속하는 것을 어찌 부인하겠는가.

"그다음 짐승들은 자신과 하나로 엮일 수 있는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들을 끊임없이 찼는다네. 그리고 그렇게 하도록 짐승들을 부추기는 충동은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사랑과 닮았다네. 사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지. 인간들도 자신을 사랑하고, 인간들도 둘이 거의 하나가 될 만큼 정신적으로 서로 완전히 결합될 수 있는 짝을 찾기 때문일세"(81절 후반부)

그러나 인간은 동물에 속하면서도 동물들과 다른 방식으로 우정을 찾고 사랑을 찾는다. 물론 동물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을 하고 우정의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닐 것이나 그들은 본능에 충실하고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데서 행위 하는데, 그 행위는 짝을 맺기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영웅전>의 저자로 잘 알려진 플루타르코스는 에세이 <동물들도 이성이 있는지에 관하여>(단행본

『수다에 관하여』에 수록)라는 역설적인 제목의 우화(寓話)에서, 동물들은 몸뿐만이 아니라 본성상 미덕을 생산하기에 인간보다 더 완전하며, '절제'에서도 뛰어남을 변론하고 있다. <동물들도 이성이..>는 분량은 그리 많지 않으나,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24권 가운데 10권의 내용, 곧 오뒷세우스가 키르케와 만나 주술에 걸려 돼지로 변해버린 동료들을 구하는 대목을 전제로 진행되므로, 『오뒷세이아』독서가 선행되지 않으면 그 맥락과 풍자를 제대로 맛보기 쉽지 않다.

 

<동물등도 이성이..>에는 오뒷세우스와 키르케, 그리고 키르케의 마술에 걸려 돼지로 변신된 동료들을 대변하는 그륄로스가 등장하여 대화를 나눈다. 키르케틑 초반에 잠시 등장할 뿐이고, 결국은 동물들을 대표하는 그륄로스와, 돼지로 변해버린 동료들 중 한 명(한 마리)이라도 데려가려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나선 인간들을 대표하는 오뒷세우스가 주고받은 논쟁이다. 

이렇듯 고전읽기는 저자가 집필 당시에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소재로 차용한 이전의 저작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주제는 건질지라도 책을 읽는 디테일한 재미는 추수하기가 어렵다. 그 결과 고전 읽기에 흥미를 잃게 된다. 논리에서 밀린 오뒷세우스는 이제 비아냥거리는데, 네거티브 공세를 펼친다.

오뒷세우스: 맙소사! 전에 아주 영특한 소피스트였던 모양이요. 그륄로스, 돼지가 된 지금도 그토록 정열적으로 문제를 다루는 것을 보니 말이오.

가만히 듣고만 있을 그륄로스가 아니다.

그륄로스: ..그대는 절제에 관해 듣고 싶어하는 군요. 하긴 그대는 가장 절제 있는 여인의 남편이고, 또 키르케의 구애를 거절함으로써 절제 있는 인간임을 입증했다고 믿으니까요.

그리고는 오뒷세우스의 아내인 페넬로페까지 끌어들여 그의 아픈 데를 무참히 찌른다.

그륄로스: ..페넬로페의 정절에 관해 말하면 수많은 까마귀들이 까옥까옥 울며 비웃을 것이오. 수까마귀가 죽으면 암까마귀는 몇 년 동안이 아니라 인간으로 치면 아홉 세대를 과부로 살아가니까요. 그러나 그대의 아리따운 페넬로페는 정절에서 그 어떤 까마귀보다 아홉 배나 열등한 편이오.

최후의 변론을 마친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를 받고, 마침내 사형이 집행되는 날 아침 친구와 제자들에게 결코 슬퍼하지 마라 죽음은 몸으로부터 혼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므로 오히려 기뻐해야 하지 않느냐, 특유의 대화로 설복시키는 책이 <파이돈>으로 제자 플라톤에 의해 책으로 묶인 내용이다. 인용은 삼가하거니와 여기에서도 영혼(혼)의 불멸을 강조하는데, 동물들의 혼에 관해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다시 키케로의 <우정에 관하여>로 돌아가서, 키케로는 진정 우정의 조건을 아주 까다롭게 제시한다. 당연한 말씀 같지만 실제 삶에 적용하기에는 너무도 힘든 조건이다.

“성격이 나무랄 데 없는 두 사람이 친구가 되었을 경우에는 예외 없이 매사에 의견과 뜻을 같이해야 하네.”(61절) 쉽지 않다. “우리가 친구를 잘못 선택했을 경우 이를 참고 견뎌야지 적대관계로 바꿀 기회를 노려서는 안 된다”, 59-60절) 그리고 상당한 기간을 신중한 선택을 위해 상대방을 '평가'해야 한다고 신중론을 펼치는데, 어찌 그것이 쉽겠는가. <우정에 관하여>의 초반부에서 두 사람이 서로 필(feel)을 통하는 대목은 순간적이고 즉물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마치 말굽자석의 공명처럼. 바로 이런 점에서 진정한 우정, 또 다른 나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나를 사랑하듯이 사랑할 수 있는 친구를 갖기가 쉽지 않고, 그것을 유지하는 일도 그러하다.

최근에 구입해서 읽은 김진송의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에는

저자가 깎은 움직이는 인형 작품들,

그 작품들을 촬영한 사진들과 궁극으로

그가 빚어낸 이야기들이 소개된다.

우정과 사랑은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이 사람이야, 싶을 때

붙잡아야 하나 아니면 신중하게 시간을 두고 짝을 맺기까지

기다려야 하나. 관련된 작품 하나를 소개하면서 

글을 맺을까 한다.

제목은 <똑같다>로

작품사진 아래에 카피를 수록했다.

 

 그런 적 없나요./ 길을 가다가 나랑 똑같이 생긴/ 벌레를 만난 적 없나요./ 아직 만나지 못했다면/ 언젠간 틀림없이 만나게 될 거예요./ 그땐 놀라지 말아요./ 벌레가 더 깜짝 놀라 달아나기 전에,/ 얼른 먼저 인사를 해요./그러면 금방 친구가 될 테니...... 158~159면,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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