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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오라버니를 존중하는 내 행동이/ 옳다고 할 거예요. 내가 아이들의 어머니였거나/ 내 남편이 죽어 썩어갔더라면, 나는 결코 시민들의 뜻을 거슬러/ 이런 노고의 짐을 짊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어떤 법에 근거하여 내가 이런 말을 하느냐고요?/ 남편이 죽으면 다른 남편을 구할 수 있을 것이며,/ 아이가 죽으면 다른 남자에게서 또 태어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어머니도 아버지도 모두 하데스에 가 계시니,/내게 오라비는 다시는 태어나지 않겠지요. "
 -<<그리스비극걸작선>>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서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의 후반부, 안티고네가 자신의 무덤이 될 석굴(무덤이여, 신방新房이여, 석굴 속 영원한 감옥이여!)로 향하면서 던지는 대사이다. 오라버니인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렀기에-국법을 어긴- 처벌을 받는 것, 안티고네는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크레온(국왕, 그녀의 외삼촌)의 처분을 당당하게 받아들인 다. 그런데, 인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왜 그가 목숨을 걸고 그것도 이미 죽은 오라버니의 명복을 빌어주었느냐, 그 이유를 밝히는 대목이다.  

1)남편이 죽으면 다른 남편을 구할 수 있다. 2)아이가 죽으면 다른 남자에게서 또 태어나게 할 수 있다. 3)그러나 어머니(이오카스테)와 아버지(오이디푸스 왕)가 모두 돌아가신 지금, 4)나 안티고네에게는, 오라비를 다시 태어나게 할 수는 없다. 오라비라는 존재는 그 무엇으로 대체(대신)할 수 없는 상황이고, 그 때문에 자신은 목숨을 걸었다는 얘기다.
세상에 이처럼 견고한 우애를 또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쌍둥이라면 같은 기간에 한 어미의 뱃속에서 자라 생명을 얻었을 것이고, 형제나 자매, 오누이 사이는 그 기간은 다를지라도 한 아버지의 씨를 받아, 한 어미의 밭(자궁)에서 자라고 태어난 사이다. 그러니 안티고네의 말처럼 세월을 거슬러 죽은 부모를 다시 살리고, 그것도 생산이 가능할 나이대로 환생시키지 않고서는 그런 형제를 다시 얻을 수는 없다.  

그토록 소중한 존재이건만 과연 형제간 혹은 자매간의 우애가 늘 돈독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서 세상살이가 복잡해지고 혼미해지게 된다. 부모의 사랑을 더 차지하기 위한 경쟁관계이기도 하며, 왕권(경영권)이나 유산(돈) 등을 두고 서로 더 많이 차지하려고 경쟁하게 되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리는 것이 또한 형제 관계이다. 그래서,

우정의 신성한 열정은 아주 달콤하고, 견고하고,
충실하고, 영속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평생 지속될 수 있다.
단, 돈만 빌려달라고 하지 않으면.(마크 트웨인, 미국작가)

과 같은 말이 친구사이만이 아니라 형제사이에도 딱 들어맞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이리라. 이와 달리, 부모가 당한 억울한 일이나 죽음과도 같은 일을 만나, '복수'를 해야 할 때 이들의 공동의 적을 제거함으로써 원수를 갚기 위한 눈부신 협동을 하는 이들이 또한 형제 자매라는 친족들이다.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는 동생 이스메네에서 오빠의 장례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이스메네는 소극적이다. 국법을 거스르면서까지 이미 죽은 이를 위해 목숨을 걸 필요가 있느냐고, 이제 한 사람밖에 남지 않은 언니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피력한다. 이후에 이스메네마저 공범으로 몰리는 과정에서 안티고네는 동생은 이 일과 무관함을 역설함으로써 어떻게든 자신과 같은 처지-죽음에 이르는-에 이르지 않도록 배려한다. 동성인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다. 그런데, 앞서 인용하였던 오빠에 대한 사랑이 너무도 각별하여, 안티고네가 폴뤼네이케스 오라버니를 사랑하는 그것이 동기간의 사랑 이상의 것으로 해석하는 평론들이 나름의 설득력을 얻고 있는 모양이다.

한편, 소포클레스의 선배이며 그리스 비극의 창시자인 아이스퀼로스의 비극에서도 흥미로운 장면이 있다. 부적절한 관계인 정부와 작당하여 남편 아가멤논을 죽인 클뤼타임네스트라(<아가멤논>), 이들의 자녀들은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는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와 그 정부를 죽임으로써 복수를 하고(<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오레스테스는 그 죄를 씻김을 받기 위해  아테나이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팔라스 아테나의 신전을 찾는다.  

그리고 아테나 여신을 판관으로 오레스테스에게 죄를 묻을 것이냐, 사면해줄 것이냐를 두고 재판을 하게 된다. 아폴론은 피고인 오레스테스의 변호인, 그리고 복수의 여신들(코로스)이 원고측의 입장을 대변한다. 원고측과 피고측 대리인 사이에서 논쟁이다.  

 

코로스장: 우리는 모친 살해범을 집에서 내쫓고 있는 것이오.
아폴론: 그렇다면 남편을 죽인 여인은 어떻게 하고?
코로스장: 그것은 같은 혈족에 의한 살인이라고 할 수 없지요.
아폴론: 사실 남자와 여인의 혼인은 운명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고/ 맹세보다 더 위대한 것이기에 정의의 보호를 받는 것 아니겠소./ 부부가 서로 죽여도 그대가 우유부단하게 그들을/ 벌주지 않거나 화를 내며 지켜보지 않는다면, 나는 그대가/ 오레스테스를 집에서 내쫓는 것을 옳다고 인정할 수 없소. (<자비로운 여신들>)

남편을 죽인 부인의 죄(클뤼타임네스트라, <아가멤논>에서)와 어머니를 죽인 아들의 죄(오레스테스,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무거운가를 두고 첨예하고 의견이 맞서고 있다. 복수의 여신들(코로스)는 혈족간의 살해를 더 위중한 죄로 보고 있고, 아폴론은 비록 피가 섞인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맹세로 맺어진 부부의 연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며, 부부간의 살육을 더 위중한 죄로 보고 있다. 사실, 흔히 '가족이라고 할 때와 '친족'이라고 할 때의 그 의미는 다른데, 가령, 부부는 무촌(無寸) 간이라 촌수를 따질 필요가 없을 만큼 가까지만 헤어지면 남남이 된다(님이라라는 글자에 점 하나 붙으면 남이 되는). 이런 입장에서라면 그것이 아버지에 대한 복수라고는 하지만 혈연관계인 어머니인 죽인 오레스테스의 죄가 더 무거운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폴론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함께 살면서 사랑하자던 맹세의 순수성과 그것을 어긴 죄가 더 무거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극심한, 그리고 가장 치유하기 어려운 증오는
깊은 사랑이 증오로 바뀐 경우다.(에우리피데스, 비극 <메데이아>에서)

지극한 사랑이 지독한 분노로 바뀌고 더 이상 잔혹할 수 없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복수를 하는 메데이아를 생각해보라. 분명, 에우리피데스도 아폴론의 의견에 찬성표 하나를 던질 것이 분명해보이지 않는가. 에우리피데스를 인터뷰를 한다면 그는 분명 오레스테스(나 엘렉트라에 대한 에루리피데스의 호/불호는 별도로 살필 문제)보다, 클뤼타임네스트라의 죄가 더 위중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위 인용은 코로스가 하는 말로, "친구끼리 사이가 나빠져 서로 미워하게 되면/ 치유할 길 없는 사나운 분노가 날뛰는 법이지요."(<메데이아> 520~521행)이다. 그렇다면 이런 가정은 어떠할까? <자비로운 여신들>의 재판을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가 참관했다면, 그리고 한 말씀 부탁드리면 안티고네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그녀의 심경이 무척이나 복잡할 것이므로, 딱히 정답이라고 할만한 대답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목숨을 걸고 죽은 오빠의 명복을 빌어주고, 자신은 죽겠지만 살아있는 동생(이스메네)은 살아갈 수 있도록 우애를 발휘하는 그녀로서는 오레스테스의 편을 들어줄 것 같다. 엘렉트라 못지 않게 아버지(오이디푸스 왕)을 사랑하고 챙기는 효녀 심청이 아니던가! 그러니, 그런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의 죄가 더 무겁다는 판단을 하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형제사이, 그리고 자매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때론 협력하여 공동의 적에게 복수를 하기도 하고, 때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형제나 형제의 가족들의 목숨까지도 솜털처럼 가볍게 생각하는(아가멤논의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하는 그녀의 작은아버지 아이기토스) 이기심을 제어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스 비극이나 그리스와 로마 시대를 다룬 저작들, 혹은 그 시대의 작가들이 쓴 저작들 속에 등장하는 여러 모습의 형제들과 여러 모습의 자매들, 혹은 오누이 사이와 누나와 남동생들에 이르기까지 사례별로 살펴보려 한다.  

-또는 배 다른 형제들(어미가 다른), 때론 아버지가 다른(헤라클레스와 이피클레스처럼) 형제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로 배제하지 않고 다룰 것이며, 작품을 쓴 작가의 삶(<일과 날>은 오비디우스가 그와 형제간인 동생에게 충고를 하는 목적을 가진 글이기도 하다)에서도 해당 부분이 있다면 역시 배제하지 않고 살펴볼 생각이다.  

-가끔은 지금 혹은 이미 방영되었던 드라마. 혹은 영화 속 형제간 자매간의 얘기도 곁들여서. 사실 대부분의 드라마라는 것이 사극이건 현대 혹은 현재 시간대를 배경으로 하건 가족들 사이에서, 특히, 왕권이나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간의 싸움이라는 것, 그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의 이 기획이 고전읽기에 나름의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뭐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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