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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희님의 서재
  • 왕과 아들, 조선시대 왕위 계승사
  • 한명기.신병주.강문식
  • 11,700원 (10%650)
  • 2013-04-15
  • : 469






책을 덮자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럿 왕과 아들이 조선시대가 아닌 요즘날에 나고 자랐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책에 실릴만한 규모의 갈등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크고 작은 어떠한 유형의 갈등이야 겪었을지언정 죽이고, 또 죽고야 마는 비극은 결코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20세기 끝자락 어느 산부인과에서가 아닌 조선시대 왕실, 그것도 왕세자의 몸으로 태어났다면? 나는 지금과 같은 부녀관계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현시대에 태어났기에 우리 아버지는 남들 눈치 없이 나를 양껏 사랑해 주실 수 있던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감정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어떻게 아비가 아들을 죽이지? 하는 반감이 안타까움으로, 왕세자로 태어나서 왜 그렇게까지 자신의 의무를 내팽개쳐버릴까? 하는 의아함이 작은 공감으로, 꽉막혀서는 고집이세고 잔인하다!는 경악이 그럴 수 밖에 없던 것일수도 있겠다는 조금의 이해심으로... 평탄치 못한 삶의 운명을 업고 태어난 그들에게서 공감과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나름의 생각 정리를 해보았다. 시대와 지위가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었구나 싶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왕과 왕세자라는 지위도, 그에 따른 갈등의 결말도 조선시대라는 시대가 부여한 것이다. 그 영향이 제일 크게 미쳤던 인물은 소현세자가 아닐까 싶다. 무능력한 나라를 등에 업고 청에 볼모로 잡혀가 9년을 살았다. 그곳에 살면서 청나라 인사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청과 조선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며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국제적인 식견을 갖추었다. 공녀로 잡혀간 여인들을 고향에 돌려보내는 둥 그는 왕세자로서의, 나아가 왕으로서의 자질과 소양도 뛰어났다. 삼전도의 굴욕만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있는 인조는 그런 아들이 못마땅했고 자신의 자리를 위협한다 생각했다. 개혁적인 아들과 폐쇄적인 아버지의 충돌의 결과는 아들의 죽음이었다. 명목상 죽음의 원인은 말라리아였지만 소현세자의 죽음을 다루는 모든 인터넷 글, 책, 영상 자료 등 어디에서나 '독살설'을 빼놓지 않는다. 아버지인 인조가 그를 죽였다는 것이다. 나 역시 조심스럽게 수긍한다. 소현세자가 죽고 난 후 인조의 행적 때문이다. 소현세자의 아들, 즉 세손이 아닌 동생 봉림대군(효종)을 다음 왕위에 앉히고, 관련 의원들을 처벌하지 않았으며 되려 세자빈 강씨를 죽이고 세손들을 유배보냈다. 수상쩍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믿기지가 않았다. 볼모가 된 상황에도 나라와 백성을 살피고 또 살핀, 장차 세종과 맞먹을 성군이 됐을 인물의 끝이 의문 투성이 죽음이라니. 또 그의 가족마저 비참한 결과를 맞을 수 밖에 없었다니. 개인적으로 웬만한 영화나 드라마의 세드엔딩보다 슬프다고 생각한다. 깊은 아쉬움도 남는다. 그가 왕이 됐더라면 아마 우리나라 역사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하고 모두들 생각한다. 또, 흔히들 상상하지 않는가? 인물의 시대를 다르게 설정하는 것을 말이다. 예를 들어, 스티븐 잡스가 중세시대 인물이라면? 아이폰의 탄생은 꿈조차 꿀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세종대왕이 21세기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면? 우리는 아직도 불편한 한자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현세자는 조금 다르다. 그가 20세기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어쩌면 훌륭한 외교관이 됐을 수도, 정치인이 됐을 수도 있겠다. 어찌됐건 총명해서 맞는 죽음만은 피할 것이다.


 이런저런 가정을 하고 투덜거려 봤자 별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이 일이 역사로 남겨졌다는 것은 어찌됐거나 지난 과거라는 뜻이고 이미 1629년에 죽은 소현세자를 되살려 놓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다만 지금이라도 각자가 뜻을 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에, 또 그 시대에 내가 살고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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