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으로 하여금 5.5미터의 청새치를 잡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생각했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우선, 노인은 나이가 들어 젊은 어부들보다 직업적 능력이 떨어지는 인물이다. 그도 젊었을 적에는 건장한 흑인과 겨루어 이겼을만큼 강인하였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에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지난 84일간은 빈손으로 돌아오는 부진한 성과를 보였다. 나는 이러한 점을 보며 노인의 미끼에 걸려든 청새치는 어쩌면 그의 자존심과도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커다란 청새치를 낚아 올렸을 때의 성취감과 동시에 열리는 스스로에 대한 가능성이 그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허망하게도 항구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청새치는 뼈만 남게 되었다. 상어들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필사적으로 청새치를 지켜내려던 노인의 모습이 마치 영상을 본 것처럼 눈 앞에 생생해 안타까움이 더했다. 앞서 나는 청새치를 노인의 자존심에 비유하였다. 그렇다고 뼈만 남은 청새치에도 비유하고 싶지는 않다. 그의 결실은 오랜 사투 끝에 청새치를 낚아 올린 것에서 끝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인과 바다는 평소 지루하다고 악명 높은 책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페이지를 처음 피게 되었을 때 막연한 두려움이 찾아왔었다.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나는 지루함은 커녕 작은 설렘을 가지고 책을 읽어 나갈 수 있었다. 나는 점점 헤밍웨이의 문체에 푹 빠져들었다. 그가 표현한 노인과 바다는 내 머릿속에서 한 폭의 유화가 되어 떠올랐다.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는 거센 이야기임에도 헤밍웨이의 보드라운 문체는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