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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리님의 서재
  • 슬픔의 틈새
  • 이금이
  • 16,650원 (10%920)
  • 2025-08-15
  • : 17,010
[표지]

눈 내린 자작나무 숲길을 한 소녀가 걷고 있다. 앞쪽에는 은색으로 반짝이는 바다와 눈 덮인 산이 보인다. 노란 댕기로 땋아내린 머리에 노란 저고리와 회색 치마를 입고 고무신을 신은 소녀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책을 끼고 걷다가 뒤돌아본 순간. 독후감을 쓰고 있는 지금, 소녀가 들고 있는 저 초록색 책은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슬픔의 틈새'가 아닐까 생각한다.

◆ 소설을 이루는 3요소 : 1구성(인물, 사건, 배경), 2주제,3 문체

[1-1구성 : 인물] 단옥 / 단옥과 유키에

59 단옥은 그동안 쌓여 있던 서운한까지 더해 할머니에게 대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고마워하기는커녕 계집애가 공연히 분란을 만든다고 오히려 단옥을 야단쳤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며 다시는 엄마 편을 들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게 기억났다.

위 상황은 할머니가 입덧하는 엄마에게 유난스럽다고 하며 엄마를 타박해서 일어난 일이다. 서술자가 모든 것을 알고 서술해주는 이야기지만 당차고, 할 말은 하는 단옥의 캐릭터를 보며 표지의 주인공이구나, 할머니, 엄마(덕춘)과는 다른 새로운 세대- 이 이야기의 초점이 되는 인물이구나, 단옥의 성장 서사가 그려지는구나 짐작해보았다.

139 브론테 자매의 소설 중 단옥은 '제인 에어'를 좋아했고, 유키에는 '폭풍의 언덕'을 좋아했다. (...)

'나는 새가 아니니 그물로 가둘 수 없어요. 나는 자유로운 인간이며, 독립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어요.'

열흘이 걸려 도착한 사할린섬에서 단옥은 유키에를 만난다. 광산에는 징용 온 한국인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일하고 있었는데-경제 상황이 특별히 더 낫지도 않은데다-유키에는 아버지와 사별한 어머니 '치요'가 징용 온 한국인과 결혼했기 때문에 일본에도 한국에도 속하지 못했다. 사할린이 일본의 항복으로 러시아령이 된 후로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단옥과 유키에의 우정은 이어졌다. 단옥과 유키에의 생활이 비록 고단했어도 일을 끝낸 뒤 같이 책을 읽고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은 참 행복해보였다. 단옥은 제인에어를 좋아하고, 유키에는 폭풍의 언덕을 좋아하는데 독서 취향에도 둘의 성격이 잘 묻어나는 듯했다. 제인에어는 읽어봤는데, 폭풍의 언덕은 안 읽어봐서 감이 잘 안 온다. 읽어봐야지. 난 어느 쪽이 마음에 들까.

213 궁금했지만 단옥은 묻지 않았다. 유키에가 예전과 달리 자기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자신이라면 무너져 내렸을 것 같은 일들을 담담하게 견디는 유키에한테 그저 호기심 어린 질문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단옥은 유키에를 존중하며 스스로 말해주길 기다리고 싶었다.

사회가 불안정하니 개인도 안정적일 수가 없는데, 그럴수록 여자들의 삶은 더 흔들린다. 앞으로 함께할 것이라 믿었던 상대가 사라져버리는 경우, 뒷감당을 오롯이 여자가 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것, 자신은 물론 아이도 손가락질을 받는 것. 목소리가 큰 단옥과 달리 조용한 유키에지만 버티고 견딘다. 살다보면 나를 주저앉히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휩쓸리지 않고 버티는 힘을 보여준 유키에에게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조용하게 버티며 시간을 보내는 일도 잘 살고 있는 거라고.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어차피 모르니까. 유키에에게는 호기심 어린 질문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스스로 말해주길 기다리는 단옥이 있다. 위로를 꼭 말로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1-2구성 : 사건과 배경]

1943년-2025년, 공주 다래울에 사는 단옥은 아버지의 징용으로 사할린(화태)에서 살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다른 곳으로 징용을 가게 되어서 다시 떨어져 살게 된다. 한국에 두고 온 가족들과도 헤어지고, 돈 벌어 오겠다는 오빠와도 헤어지고, 아버지와도 헤어진다. 광복이 된 후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지만, 한국(남한)에서는 부르지 않고 (일본은 항복한 이후, 사할린에 귀환선을 보내 일본 사람들을 데려간다. 자신들이 징용 보낸 한국 사람들은 나몰라라 한다), 러시아에서는 못 나가게 하고, 북한에서는 북한 국적을 받을 것을 종용한다. 그 세월이 오래되어 1세대는 무국적, 2,3세대는 각자 취업과 공부를 위해 북한이나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다. 사할린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108 나중에 돈 주고도 쌀을 구하기 어렵게 됐을 때 싸게 판 걸 아까워하는 단옥에게 덕춘이 말했다.

"니 오라비 굶을 때도 누가 그렇게 도와주겄지."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로 도움, 돌고 도는 도움.
'각자도생'이 어떤 삶인지 알 것 같다. 어려움에 외로움 추가.

141 "같이 갑시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요. 우리도 여기서 할 일이 없기는 마찬가지예요. 저나 치요는 농사를 잘 모르니까 형수님만 믿어요."

응답할 1988이 생각난다. 어렵고 힘든 시절에는 이런 마음을 내어 살았구나.

256 단옥과 유키에네 가족에는 북한, 소련, 무국적이 다 섞이게 됐다. 사할린에는 부부, 부모, 형제 간에도 국적이 다른 경우가 흔했으며 북한 국적은 6개월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했다.

불안정성의 크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비교, 상대성...

260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극동국립대학교 경제학부

러시아에 가본 적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하바롭스크 7박 8일 일정이었다. 그 때 러시아 극동대학교에 한국어학과가 있다고 하여 견학을 갔었는데, 바다 옆에 있는 대학교이고 풍경이 무척 예뻤던 기억이 난다. 벤치에 앉아서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모습을 보며 여기가 대학교인가 여기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매일 이 경치를 보는거나 부럽다 등등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소설을 읽다가 이 학교가 갑자기 튀어나온 느낌을 받았는데 이 학교와 내가 연결점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갑고 설레기도 했다. 한나절 돌아본 것이 뭐라고 이런 마음인데...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정말 어떤 마음일까.

[2주제]

242 언제 다시 볼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고생스러웠던 기억보다 치요가 꽂아놓았떤 들꽃, 부엌의 지저분한 창틀을 덮었던 수놓은 작은 보, 덕춘에게 내주던 차의 향기 같은 것들이 마음에 남았다. 전부, 먹고살기 바쁜데 쓸데없는 짓 한다고 못마땅해하던 일들이었다. 덕춘은 삼베처럼 거칠고 소나무 등걸처럼 갈라진 자신의 삶을 어루만져준 건 바로 그런 것들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제 누구에게서 그런 위로를 받을까.

284 단옥은 (...) 고생스럽긴 했어도 날마다 난생처음인 것들을 접하며 갇혀 있던 생각이 깨지고 부서지며 넓어졌다.

-인생에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
-목적지까지 가는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다다른다는 것

사할린에서 일어난 일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루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존중과 경이감이 들기도 했다. 먹고살기 바쁠지라도 들꽃을 돌아보는 그 틈이 행복일까. 슬픔의 틈새일까. 슬픔 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3문체]

446-447 많은 참고 자료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사할린 섬이 이렇게 큰 섬인지 몰랐다. 홋카이도 위에 이렇게나 큰 섬이 있었다니. 이산 가족은 6.25 전쟁 배경으로만 생각했지 이렇게 기나긴 역사 속에 한 번의 선택이 평생 가족의 얼굴을 못보는 선택이 된 일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슬픈데 아름답기도 하고 이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 게 아닐까? 이 책 '슬픔의 틈새'는 실존 인물 '단옥, 타마코, 올가'가 남긴 책 같다.

이금이 작가의 3부작에 포함된 다른 이야기들도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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