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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열 살의 나이로 프라하에 갔다가 5년 후 일본으로 돌아온 저자가
1995년 함께 프라하의 학교에 다니던 그리스,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친구들을 실제로 찾아내는 과정과
그들과의 만남을 기록한 이야기..
소련치하의, 그리고 소련붕괴 후의 동유럽(중부유럽) 사회의 단면을 틈틈이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도 한 이삽십년 후 즈음에는..
우크라이나에서 가르쳤던 우리 학생들을 만나보고 싶은데..
만나게 되면 기분이 묘할 것 같다 ^^
p.29 노동자 농민의 해방을 역설한 레닌 스스로가 사실은 생애에 단 한번도 노동으로 자기 생활을 꾸린 적이 없다는 사실이며, 지주로서 소작인에게 소작료를 받아 생활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최근이다.
pp.98~99 그러니까 막 쓰는 노트를 거쳐 심사숙고한 다음에야 정서를 하게되어 있었다. 잉크 자국 하나라도 있으면 감점 대상이 되었고, 한 번 쓴 위로 지움표나 X표를 하고 다시 쓴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충분히 가다듬지 않고썼다는 증거로 간주되었다.
...... "한번 쓴 글은 도끼로도 못 깎아낸단다. 그래서 가치가 있는 거지. 곧 지울 수 있는 연필로 쓴 것을 남의 눈에 띄게 하다니 무례천만이야."
...... 이 정식 노트는 묶여 있는 부분에서 3분의 2쯤 되는 곳에 세로 줄을 그어, 그 선 밖으로는 못쓰도록 되어 있다. 이 세로줄을 러시아어로 pole라고 하는데, 영어로 field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 폴레 때문인지 소비에트제 학생용 노트는 가로세로가 모두 21센티미터로 정사각형이다.
2001~2004 당시 우크라이나의 대학교에서도 변함없었다..
내 수업시간에도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여전히 pole가 그어진 같은 소련식 노트를 사용했고, 숙제노트를 별도로 사용했다.
유난히 노트에, 노트 활용에 집착했다. 이런 문화를 미리 알았더라면 학생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p.112 이때의 내셔널리즘 체험은 내게 이런 걸 가르쳐주었다.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다른 나라 사람을 접하고나서야 사람은 자기를 자기답게 하고, 타인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려고 애를 쓴다는 사실 ......
p.135 "들에서 지낼 때는 모두가 한 마음이라 누가 어디 민족이든 아무도 신경을 안 쓰더니, 정권을 쥐자마자 당장 국수주의로 변해버렸지. 당시의 리더였던 데지가 그러는거야. 자기는 신경을 안쓰지만 나라를 다잡아가려면 민족주의는 불가결하다고."
p.145 "확실히 사회의 변동에 제 운명이 놀아나는 일은 없었어요.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른다면 행복은 저처럼 사물에 통찰이 얕은, 남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한 인간을 만들기 쉬운가봐요."
"단순히 경험의 차이겠죠. 인간은 자기의 경험을 토대로 상상력을 발휘하니까요. ......"
p.180 다른 이의 재능을 이렇게 사리사욕 없이 축복해주는 넓은 마음, 사람 좋은 성향은 러시아인 특유의 국민성 아닐까.
p.180 " ...... 서구로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 이것만큼은 러시아가 뛰어났다고 절실하게 느낀 게 있어요. 그건 재능에 대한 사고방식의 차이죠. 서구에선 재능이 자기 개인에게 속하는 것이지만, 러시아에선 모든 이의 재산이랍니다."
p.221 동양인에 대한 냉혹한 대우는 서구 어느 나라 보다 노골적인 것 같다. 물론 서구 선진국에도 이런 일이 없지는 않다. 그저 좀더 세련된 모습으로 표현될 뿐.
pp.221~222 '동'이란 말은 이미, 제1차 세계대전까지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오스트리아 아니면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오스만투르크 지배하에 놓였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는 소련 산하에 들어가게 되느라 서쪽의 기독교 여러 나라보다 '발전' 대열에서 소외되어버린 지역, 게다가 냉전에서 진 사회주의 진영을 가리키는 기호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 그 말에 후진국의 가난한 패배자라는 이미지가 따라다니기 때문일 것이다. '서구'에 대한 일방적인 동경과 열등감, 표리일체로 '동구'로서의 자기 멸시와 혐오감 ......
...... 이 중부유럽 가톨릭 여러 나라의 '동'에 대한 혐오감이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 것이, 같은 기독교면서 11세기 이후 분파를 달리한 이슬람 지배하의 동방정교회에 대한 근친증오의 적의가 아닐까.
...... 동방정교를 문화적 근본으로 삼은 러시아에게 국토를 유린당해 이 감정은 더 증폭된 것이리라.
p.223 알랭 들롱의 고향, 유고슬라비아.
p.225 "슬로베니아도 크로아티아도 폴란드나 체코, 루마니아도 제 얼굴을 잊은 듯한 서구병 중환자죠."
p.225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기본적으로 합스부르크조 오스트리아 영역에 들어간 가톨릭 문명권으로서 발전한 지역인 것에 비해,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는 비잔틴 제국의 정교문명을 바탕으로 오스만투르크라는 이슬람 문명권에서 살아왔다.
p.233 작은 모스크는 미안하다는 듯이 조촐하게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