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성안수가 비성경적이라고 하는 걸까?’ ‘부부가 같이 사역하는 게 가능한가?’ ‘신학생이 인용하는 저 말씀이 저 맥락에서 실제로 하는 말이 맞나?’ ‘여성학이 신학에 위반되나?’ 이전부터 가져왔던 질문들이고 지금도 부딪치는 질문이다. 여성학 수업을 듣는데 신학생들이 구조와 기능을 왜곡한다고 화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명한 복음주의 목사들이 가부장제가 성경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간간히 생각했던 것들이 틀린 생각이 아니라는 것과 내가 지금까지 페미니즘에 관해 읽어왔던 독서 여정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하는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하나의 회개에 가까운 이야기이자, 이제껏 자기가 해왔던 침묵에 대한 참회다. 하지만 이 침묵은 자발적으로 침묵한 것이기보다 온화한 목소리로 강요받은 침묵이다. 이 강요받은 침묵은 또다른 죄를 만들어왔다. 최근에도 또 그루밍 성범죄의 소식이 들려온다. 언제 한 번 다른 책에서도 접했던 이야기를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본다. 가부장제가 어쩌면 타락의 산물이 아닐까라는 이야기가 말이다. 이 책을 읽는 가운데 내가 자각했듯 각자의 자리에 선 그리스도인들도 다시 자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여전히 들려오는 가부장제의 목소리를 향해 예수의 복음을 제시하며,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그리스도가 여성을 대하듯, 남자와 여자가 모두 그리스도의 형상이라고 하는 성경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며 함께 설 수 있길 바란다. 어쩌면 오늘날 교계의 그루밍 성범죄와 여성 폭력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그 복음으로 돌아가서, 그 이야기로 돌아가서 함께 서서 걸어가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지 않을까? 우리가 세상과 다름을 보여주고 싶다면 예수의 여성에 대한 태도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각자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우며 예수님이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실제로 구현하고 보여줌으로 세상의 가부장제와 예수의 말은 달랐음을 되새기고 살아낼 수 있길 바랍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일꺠워 준 말, 곧 우리의 모든 일이 중요하고 우리가 부름받은 일을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함께 세운다는 사실은 타당하다. 만일 우리가 권력과 권위에 대한 논쟁으로 분열되는 대신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마침내 함께 서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P284